얼굴이 지워지다
犬毛 趙源善
얼마나 걸었는지 모른다. 지겹게 걸었다. 보고 싶고 듣고 싶고 먹고 싶고 자고 싶고 말하고 싶다. 끝없이 막막한 벌판에서 지친 몸으로 무조건 차를 탔는데 이게 어디로 가는지 나는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모른다. 차안은 묘지처럼 어둡고 침침하고 조용하다. 꾸역꾸역 타기만하지 내리지는 않는다. 겨우 발 디디고 짐짝처럼 포개져 밀리고 밀려서 마냥 안으로 자꾸 들어가기만 한다. 쏴하고 천정 한가운데 환기통에서 먼지 같은 피비린내가 부옇게 밀려나온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이며 지금은 언제일까? 머릿속이 새하얗게 지워지는 느낌이 든다. 취한다. 덜컹 균형을 잃고 혼비백산 앞으로 넘어진다. 앞이 희미하다. 아악 이게 어찌된 일인가. 앞사람도 뒷사람도 모두 하나같이 얼굴이 없다. 그렇다면, 이 차는? 사람의 얼굴을 지우는 차다. 내 얼굴도 이미 지워졌으리라. 불안한 어느 한 순간 몸이 연기처럼 환기통으로 빨려나와 하늘에 내던져진다. 둥둥. 스멀스멀 가슴이 맑아져 옴을 느낀다. 비로소 푸른 초원이 보이고 향기로운 흙냄새가 나고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린다. 아 아! 이제부터 나는 참으로 진정한 자유인이 되었나보다.
<1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