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箱子
犬毛/趙源善
제 一의 상자는 속이 하얗게白 비었더이다.
제 二의 상자는 속이 까맣게黑 비었더이다.
제 三의 상자는 속이 파랗게靑 비었더이다.
제 四의 상자는 속이 빨갛게赤 비었더이다.
제 五의 상자는 속이 노랗게黃 비었더이다.
제 六의 상자는 속이 아주 하얗게白白 비었더이다.
제 七의 상자는 속이 아주 까맣게黑黑 비었더이다.
제 八의 상자는 속이 아주 파랗게靑靑 비었더이다.
제 九의 상자는 속이 아주 빨갛게赤赤 비었더이다.
제 十의 상자는 속이 아주 노랗게黃黃 비었더이다.
이제는
열어보나마나 텅 빈 것이 뻔하지만
그래도
뚜껑을 연다는 아둔한 궁금증 때문에
못내
한 가닥 남은 순간의 미련을 움켜쥐고
행여나 썩은 준치라도 한 마리 건져볼까
다음 상자 앞에
더듬더듬 눈 감은 채
부스럭부스럭 또 꾸부정히 섰으니.
도처到處에 상자箱子는 무궁무진無窮無盡 늘비하더이다.
<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