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2년)

2012년 5월 15일 - 아름답고 슬픈 추억

犬毛 - 개털 2012. 5. 18. 16:59

2012년 5월 15일 - 아름답고 슬픈 추억

犬毛 趙源善

 

 

30여년을 몸 바친 직장을 은퇴한지 아직 1년이 채 못 되었지만 지나온 세월동안 해마다 5월 15일의 아름다운 추억만큼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으리라. 그러나 올해 2012년에는 새로운 아름다움과 함께 아주 진한 슬픔을 맛본다.

 

5월 15일 아침 눈 뜨자마자 나는 내가 기억하는 내 일생의 스승들께 휴대폰으로 문자인사를 올린다. 직접적인 은사님이 아니더라도 내 삶 중에서 훌륭한 가르침을 받았다고 생각되는, 내가 존경하는 분들은 모두 아홉 분이다.

<스승의 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건강을 기원합니다.조원선 올림.>

금방 문자도착 신호음이 울린다.

<고맙습니다. 스승의 날을 축하합니다.>

몇 분의 어른들이 벌써 답신을 보내신다. 참으로 부지런하신 분들이다.

 

컴퓨터 앞에 마주앉아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내가 가입한 20여 개의 인터넷문학카페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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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犬毛  趙源善

 

 

종말의 그날까지 모든 길이 이리 통하리니

 

여태껏 영원했으며

지금 영원하고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다.

<1205>

 

***************

<우리 모두는 각자가 누군가의 제자이자 스승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우면서 또 한 편으로는 가르치는 것입니다.

스승의 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http://blog.daum.net/jws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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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다시 위의 글을 내가 좋아하는 지인들 수십 분에게 메일로 발송한다.

 

얼른 엊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주방을 인계하면 아내가 아침식사 준비를 한다. 약 1년 만에 이제는 익숙해진 봉사내지는 분업의 삶이다. 거실에서 귀로 텔레비전의 뉴스를 들으며 눈으로 신문을 읽으면서 아내에게 오늘 영화구경이나 가자고 말을 건넨다.

 

전화벨이 울린다. 40줄의 여제자 M. 찾아뵙지도 못하고 전화로 인사 올려 죄송하다며 느닷없이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수록...................아 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노래를 끝까지 불러준다. 전화 속 목소리가 마지막 소절에서는 끈적거린다. 나도 눈물이 핑 돈다. 아내가 거실로 나와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다. 곧 한 번 찾아뵙겠노라고. 건강하시란다.

허 허 허. 그래. 그래. 난 참 잘 있다. 건강하다. 잊지 않고 전화주어 참 고맙구나. 늘 행복하렴.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참으로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들이 떠오른다.

27세 첫 발령지가 서울의 명문사립 S 여고이며 거기서 12년을 보내고 그 후부터 쭉 서울 시내 여러 중학교에 19년을 근무, 내 청춘시절의 제자들은 지금은 나이든 아줌마들이다.

 

어느 해는 꾸역꾸역 자기들의 애인들을 데리고 와 자랑하면서 술 사 달라 줄을 서더니

어느 해는 하나하나 시집간다고 청첩장을 들이대고

어느 해는 아이를 하나씩 안고 모임에 나오더니

어느 해는 난 화분 보내기 경연대회를 펼치고

어느 해는 경쟁적 술잔 올리기로 잔뜩 퍼 먹여 들쳐 메고 집으로 쳐들어오고

어느 해는 건강보약을 한 보따리 택시로 실어 보내고

어느 해는 연극공연에 초대하고

어느 해는 오페라 공연에 초대하고

어느 해는 여행가면 사모님과 함께 입으시라며 커플티를 보내고

어느 해는 전화로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불러주다니.

 

이런저런 생각하며 아내와 외출 준비 중에 또 전화가 온다. 역시 여제자 Y. 점심은 자기 가게에서 드시란다. 노원역 근처 Oxx Bxxx 노원점 점주다. 1시 좀 지나 도착한다. 활짝 웃으며 나와 아내를 번갈아 포옹해주는 제자. 제가 직접 만든 스테이크요리. 맛나게 먹으며 생맥주도 마셔가며 옛 이야기를 나눈다. 바쁜 중에 그녀의 가게 직원들이 축하 케이크를 준비해 노래도 불러주고 즉석 사진도 찍어주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는 아쉬운 시간. 점포 앞에서 포즈를 취한 제자. Y는 늘 명절 때마다 잊지 않고 선물을 보내온다. 제자들 중에 가장 기억력(?)이 좋다. 아내가 특히 제일 좋아한다. 허 허 허.

 

저녁에 집에서 다시 휴대폰의 수신 문자 확인을 하던 중 김xx선배님의 회신문자를 발견하고 놀란다. 초임 때 많은 가르침을 주신 까마득한 대학 선배(57학번 영문과). 근간 전화연락이 잘 안되어 만남이 몇 달간 뜸 했던 분인데. 아 아.

<문자 고맙네. 나는 현재 췌장암4기로 투병 중이네. 곧 털고 일어나겠네.>

바로 전화를 드리지만 계속 신호가 가도 받지 않으신다. 여러 번 반복해도 안 된다. 할 수 없이 문자를 보낸다.

<화이팅! 쾌유기원! 힘내세요. 연락주세요. 꼭.>

아무쪼록 어서 빨리 나으시기를 마음 속 깊이 기원한다.

 

2012년의 5월15일은 아름답고 즐거운 한편으로 아쉽고 참 슬픈 추억이다.

이 세상의 모든 스승과 제자들이여 영원히 오래도록 건강하고 행복하시라.

정말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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