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옥脫獄
犬毛/趙源善
허기를 채우려고 기웃거리다가 그만 냉장고에 풍덩 빠졌다
그 속에 돌돌 말려 쪼그려 앉았다
코앞의 이상한 냄새를 쫓으려 양말을 쉽게 벗었다
아주 시원하다
잠시 생각 끝에 다 벗어치우기로 결심한다
나는 족쇄 같은 공간에서 애써 옷을 벗으며 진땀을 흘린다
오른팔을 빼고 뒤틀어 왼팔을 또 빼서 겨우 윗도리를 해 치운다
오른 다리를 빼고 궁둥이를 들고 왼다리를 또 빼서 바지도 해 치운다
속옷은 다소 수월하다
오싹 소름이 끼친다
이층 시렁의 보리차 한 모금 꺼내 억지로 마시는 목구멍이 꾸르륵하고 운다
잠시 졸아본다
문밖의 모르는 세상에서 두런두런 뭔 소리가 들린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나 보다
나를 가려주었던 뒤집혀진 옷가지는 쉰 갓김치처럼 초라하다
다시 주워 입기가 귀찮다
문득 물에 잠겨 통속에 갇힌 두부 한 모가 무기징역을 연상 시킨다
머리털이 쭈삣 선다
구부러진 허리가 슬슬 아파오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오랜만에 보는 나의 쪼그라든 불알 망태기와 발딱 선 젖꼭지도 꽤 웃긴다
낄 낄 낄
금방 싫증이 똥구멍을 간지른다
노는 게 지겹다
이제 나는 문안에서 문밖을 노크해 본다
내게 대충이라도 맞는 다른 옷이 어디 있나 찾아봐야한다
나는 비록 발가벗었어도 고개는 들고프다.
문이 열리려나?
나를 가두고 있는 건 바로 나였다.
<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