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0.6월 이전(플래닛에서 이동)

탈옥脫獄

犬毛 - 개털 2006. 3. 14.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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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옥脫獄

犬毛/趙源善



허기를 채우려고 기웃거리다가 그만 냉장고에 풍덩 빠졌다

그 속에 돌돌 말려 쪼그려 앉았다

코앞의 이상한 냄새를 쫓으려 양말을 쉽게 벗었다

아주 시원하다

잠시 생각 끝에 다 벗어치우기로 결심한다

나는 족쇄 같은 공간에서 애써 옷을 벗으며 진땀을 흘린다

오른팔을 빼고 뒤틀어 왼팔을 또 빼서 겨우 윗도리를 해 치운다

오른 다리를 빼고 궁둥이를 들고 왼다리를 또 빼서 바지도 해 치운다

속옷은 다소 수월하다

오싹 소름이 끼친다

이층 시렁의 보리차 한 모금 꺼내 억지로 마시는 목구멍이 꾸르륵하고 운다

잠시 졸아본다

문밖의 모르는 세상에서 두런두런 뭔 소리가 들린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나 보다

나를 가려주었던 뒤집혀진 옷가지는 쉰 갓김치처럼 초라하다

다시 주워 입기가 귀찮다

문득 물에 잠겨 통속에 갇힌 두부 한 모가 무기징역을 연상 시킨다

머리털이 쭈삣 선다

구부러진 허리가 슬슬 아파오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오랜만에 보는 나의 쪼그라든 불알 망태기와 발딱 선 젖꼭지도 꽤 웃긴다

낄 낄 낄

금방 싫증이 똥구멍을 간지른다

노는 게 지겹다

이제 나는 문안에서 문밖을 노크해 본다

내게 대충이라도 맞는 다른 옷이 어디 있나 찾아봐야한다

나는 비록 발가벗었어도 고개는 들고프다.


문이 열리려나?

나를 가두고 있는 건 바로 나였다.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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