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9년)

어버이

犬毛 - 개털 2019. 5. 8. 12:19

 

 

 

어버이

견모 조원선

 

엄마와 아빠는 24년생 동갑내기로 황해도 신계의 대부호의 딸과 아들. 각각 호수돈여고와 배재고ㆍ경성사범을 유학. 엄마는 전조선연식정구대표선수, 아빠는 밴드부ㆍ유도ㆍ수영선수 출신. 아빠는 일본징용에 끌려갔다가 천운으로 살아오셨고 두분은 그시대에 연애결혼. 엄마는 처녀 때 정구이외에도 자전거ㆍ스케이트ㆍ탁구 ㆍ 승마까지 하셨고.

이 쟁쟁한 분들이 지주추방 당해 1.4 후퇴때 맨몸으로 월남하여 알고생하며 4남매 키우신 것. 누나는 이북이 고향. 나는 6.25전쟁 휴전직후 이남에서 태어나고 내 아래로 여동생이 둘.

닭잡으면 무조건 다리는 아버지와 나 모가지는 누나 날개는 두 동생의 몫. 나는 이미 초등시절 경기중 낙방. 재수해서도 또 낙방한 시골인재(?).

아무튼 누나는 배화여고 나는 양정고를 서울에서 유학. 부모님 고생하셨다.

아빠는 내가 대학다닐 때 서울로 직장 옮기시고.

엄마는 서른에 나를 낳으셨는데 딱 내가 서른일때 풍 맞으셔서 전신마비와 당뇨, 치매로 고생하시다가 마흔일때 돌아가시고 아빠는 나 마흔 다섯일때 쓰러지셔서 두번의 뇌수술후 의식없이 6개월 계시다가 떠나셨다. 두분 다 말년에 질병의 고통으로 몹시 고생하셨다.

파란만장. 그저 그잘난 병수발 조금 한 게 외아들로 내가 해드린 치사한 짓거리. 목욕시켜드리고 머리깎아드리면 참 좋아하시지만 양칫물을 꿀꺽꿀꺽 삼키시고 생과자를 이부자리 밑에 꾸겨넣어뒀다가 손자에게 몰래 내밀던 엄마. 더러워서 싫다고 안 먹으려는 어린 아들놈을 할머니보시는 앞에서 억지로 먹게시켰었다.

의식없이 촛점없는 눈동자로 힘없이 누워계시던 아빠. 결국 괴사가 진행되고. 최종적으로 연명을 위한 투약과 손목절단수술 등 치료를 끊기로 결정한 나였다.

두분을 합장해 모시던 내가 오십일곱에 은퇴하고 육십에 제주로 불쑥 이주했다. 육년 들어서는 동안 난 겨우 두번 상경하여 성묘했고 늘 누나와 여동생들과 내 아들이 나를 대신했다. 난 서울가는 게 싫다.

그리하여 불효자다. 그리고는 날마다 엄마 아빠 그립다는 핑계로 막걸리만 마신다.

아 아! 난 정말 정말 나쁜 놈이다. 흑흑흑.

(19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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