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8년)

고대극회사 1977년 초

犬毛 - 개털 2018. 12. 25. 16:28

15. 최유진 연출의 지방초청공연 및 신입생 환영공연 <대머리여가수> (1977년 연초)

 

75년 총학생회가 해체되고 학도호국단이 들어선 이후 76년부터 별다른 학내소요사태가 없는 가운데 당시 고참 선배였던 최유진(물리70)과 정동천(토목72)의 노력에 힘입어 회원수를 늘려가고 참신한 기획력으로 다시 활발한 공연활동을 전개해가던 고대극회는 77년 연초 대구 및 부산 교우회의 초청으로 지방공연을 가게 되고, 이 공연은 개학 후 신입생 환영공연으로 본교에서 다시 공연되었다.

 

레퍼토리는 이오네스코의 부조리극 <대머리여가수(이가형 번역)>였다. 고대극회에서 3번째로 공연하는 이 작품은 회장 정동천(토목72)이 기획을 맡고 최유진(물리70)이 연출로 나섰는데, 출연진으로는 스미스 역에 이동희(토목73), 스미스 부인 역에 정진형(심리74), 마틴 역에 장영린(경영76), 마틴 부인 역에 심기연(심리75), 소방서장 역에 주진모(농학76), 메리 역에 박광옥(위생76)이 캐스팅되었다.

▲ 76년 <대머리여가수> 출연진 : 이동희, 정진형, 장영린, 심기연, 주진모, 박광옥

 

스탭진으로는 조연출에 정성환(국문71), 무대감독에 황근(독문72), 무대미술에 조원선(체교73), 김교찬(사학76), 소품에 승서영(화학76), 조명에 조주경(전기75), 장세호(물리76), 의상에 박영숙(심리74), 사공경(생물75), 진행에 김기하(사회76)가 참여했고, 당초 마틴 역으로 캐스팅되었다가 징병검사를 받는 바람에 언제 입대하게 될지 몰라 도중하차했던 이성용(체교76)은 막판에 기획보로 참여했으며, 당시 고대 사진동아리 호영회(虎影會) 회원으로서 사진촬영을 담당했던 김선혜(임학75)는 이듬해 정동천과 결혼을 하게 된다.

 

당시 팸플릿 ‘연출노트’에 “대머리여가수는 ... 너무 잔인하다. 지나치게 폭력적이다. 나의 대뇌를 망치로 때린다.”라고 썼던 최유진 연출은 틀에 박힌 기성사회체제를 코믹하게 풍자하고 질타하는 <대머리여가수>의 반연극적 특성에 맞춰 자연스러운 웃음을 끌어내면서도 강렬한 충격을 주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의자 5개가 세트의 전부였던 이 공연에 대해 당시 참여했던 극회동우들은 이동희, 주진모 등의 자연스러운 코믹연기가 좋았고, 마지막 장면에서 당시 영국의 인기 록그룹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패러디하여 출연자들 각자의 목소리가 뒤섞이는 혼성이 계속 되다가 일순간 모두 말을 끊는 방식으로 연출하는 등 ‘코믹성’과 ‘충격성’을 잘 살린 공연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 77년 <대머리여가수> 공연 팸플릿 표지

 

이러한 <대머리여가수>는 77년 2월 5일 오후 1시에 대구 시민회관 대극장에서 제일 먼저 상연되었다. 이 지방공연에는 그동안 고대극회를 사찰하면서 극회원들과 친해져버린 성북경찰서 정보과 수사관도 같이 따라다녔다. 그런데 5일 공연 직후 표 판 돈을 갖고 비용정산을 해주러 와야 할 대구교우회 측 일을 보던 재학생이 나타나지 않는 바람에, 조원선과 이성용만 숙소인 경도여관에 이른바 ‘이노꼬리(인질)’로 잡혀 있다가, 조원선이 그 학생을 수소문 끝에 연락이 닿아 문제를 해결한 후 하루 늦게 부산으로 합류한 일이 있었다. 대구공연이 극장이 너무 커(2,000석 규모) 대사가 잘 들리지 않았고, 비용정산에도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5일 저녁 부산에 도착한 회원들이 식사로 제대로 못하는 등 공연결과와 기획적인 면에 불만이 쌓였던 최유진 연출이 6일 저녁 부산 이수장여관에서 술이 많이 취해 사과상자를 엎고 자해소동까지 벌이는 등 어수선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8일, 9일 부산 시민회관 소극장에서 거의 만석을 채우고 3회의 공연을 마친 당시의 극회원들은 오랜만에 지방을 순회하며 도합 4천여 명의 관객들과 함께했던 이 공연을 잊지 못할 즐거운 추억으로 회고하고 있다.

▲ <대머리여가수> 부산공연 시 여관 내 풍경

 

이렇게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남긴 2월 초의 이 <대머리여가수> 지방초청공연에 대해 당시의 <고대신문>은 ‘지방관객과 교우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으나 ‘약간은 무성의했던’ 공연이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이는 당시 지방교우들의 서울연극무대에 대한 기대에 비해 세트가 너무 단출했던 때문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이후 연출을 보다 섬세하게 다듬어 77년 신입생 환영공연으로 3월 17~19일 본교 시청각교육실(3-202)에서 다시 올렸을 때 관객들이 배꼽을 잡고 웃으며 많은 호평과 찬사를 보냄으로써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

 

▲ 당시 <고대신문>의 신입생환영공연 예고 기사(1977.3.15.)

 

1970년 이후 4년간의 군복무기간을 빼고 숱한 고대극회 공연에 참여하면서 <깨어진 항아리(’71)>, <의사놀이2(’75)>, <유령(’75)>, <대머리여가수(’77)> 등의 연출과 전설적인 선후배합동공연 <맥베드(’76)>의 기획 등으로 활약해오던 최유진은 79년부터 문예진흥원에서 <제3세계연극제(’81)>, <국제민속예술제조직위원회(CIOFF) 초청공연(’81)> 등의 공연기획을 담당하고, 당시 공연예술계를 위한 획기적 사업 중의 하나인 <공연예술총서>를 기획하여 출간해내기도 한다. 또 TBC PD였던 심현우(사학68) 선배와의 인연으로 79년부터 극단 <시민극장> 창립동인으로도 활동하며 1980년 <타이거맨(이호재, 김희진 출연)> 연출을 맡아 까페 <떼아트르 추(대표 추송웅)>에서 공연하기도 하고, 82년에는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한국본부(‎ASSITEJ Korea) 설립이사로도 활동한다.

 

▲ 최유진(1985)

 

그러던 그는 1983년 3월 고대극회 동기 최선택(농화70), 고금석(독문70)과 의기투합하여 <앞서가는 멋쟁이 HQ>라는 공연기획단체를 만들고 첫 기획공연으로, 피터 한트케의 1인극 <카스파>를 기획, 그해 5월 극단 <에저또>의 이름을 빌려 문예회관소극장에서 공연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둔다. 78년 <프라이에 뷔네>에서 고금석이 연출해 큰 반향을 일으켰던 <카스파>를 리바이벌해서, 고금석이 다시 연출을 맡고, 당시 칠레로 이민을 떠났다가 잠시 귀국한 최선택(현 세계한인무역협회 부회장)이 주연배우로 열연한 이 작품은 이후 최선택이 칠레로 떠난 뒤 출연자를 주진모(’83 11월), 고금석(’84 6월)으로 바꾸어가며 장기간 롱런했고, 84년 1월 서울극평가그룹에서 83년도 최우수연극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 83년 <카스파> 포스터 및 공연장면

 

83년 10월에는 1980년 고대극회에서 공연하여 호평을 받았던 아라발의 <건축사와 아씨리 황제(박준근 연출, 주진모, 양윤석 출연)>을 박준근 연출, 주진모, 정재진 출연으로 공연하기도 한 최유진의 <앞서가는 멋쟁이 HQ>는 84년 <공옥진의 모든 것>, 창무회 5회 정기공연 <서기 2000년의 춤>, 조승미발레단의 <십자가 밑에서> 등 무용, 음악공연 및 <보덴호수 말 타고 건넌 기사(고금석 연출)> 등의 연극공연을 계속 기획함으로써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극단 <시민극장> 창립동인이었던 최유진이 84년 심현우와 함께 독립방송프로덕션사 <시네텔서울>로 직장을 옮기고 그해 <시민극장(대표 심현우)>이 개관한 <시민소극장> 운영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서, 그의 <앞서가는 멋쟁이 HQ>는 <시민소극장>을 거점으로, 연극은 극단 <시민극장>의 이름으로, 무용 및 음악 공연은 <앞서가는 멋쟁이 HQ>의 이름으로 활동을 전개해간다. 이 무렵 고대극회 76학번 후배 김기하, 주진모, 이성용 등도 가담하여 고대극회 출신들이 주축이 된 이 공연기획집단은 84년 11월에 최유진 연출의 <대머리여가수>를 이희연, 박혜진, 주진모 등의 출연으로 다시 한 번 상연하는데, 박혜진은 이때의 스미스 부인 역으로 85년 동아연극상 여자연기상을 수상한다. 이어서 <비계 낀 감자(’85 정순모 연출)>, <수업(’85 채승훈 연출)> 등의 이오네스코 시리즈를 계속 상연하여 국내최초로 한 작가의 작품을 연속 상연하는 페스티벌 공연을 시도하는 한편, 중고교 연극반 지도교사들의 <공연예술동호인회(현 교사연극협회의 전신)> 및 <직장인연극동호회>의 결성과 공연기획을 지원하기 시작하고, 선거풍자극 <서울홍길동(최유진 연출)>, 신촌크리스탈소극장 개관기념공연 <인형(최유진 연출)> 등도 제작한다.

 

▲ 84년 최유진 연출의 <대머리여가수>

 

85년 5월 최선택의 <카스파>를 극회동우 유혜숙(신방70)이 운영하던 미국 LA <스페이스311소극장>에서 다시 공연하기도 한 <앞서가는 멋쟁이 HQ>는 86년에 최유진이 당시 정극단으로 등록돼있던 <시민극장>의 대표직까지 인수하고, 여성국극 재기무대 <춘향전> 기획 및 <대머리여가수> 재공연(김태수 연출) 이후, <올훼의 죽음(최유진 연출, 이성용 주연)>, <결혼(최유진 연출)>, <보석과 여인(김기하 연출)>을 이강백 시리즈로 연속 상연하고, 박재서의 사회풍자극 <팽(김태수 연출, 오광록, 원영애 등 출연)>, <고시래(심현우 연출)> 등도 제작함으로써, 87년 1월 서울극평가그룹으로부터 문제작가 작품시리즈를 공연한 공로로 극단 <시민극장>이 86연극상 특별상을 수상한다.

 

▲ 86년 최유진 연출의 <결혼>

이러한 극단 <시민극장>과 <앞서가는 멋쟁이 HQ>는 이후 자금난을 겪으며 87년에 최유진대표가 오리콤 이벤트 팀장(’87~89)으로 취업하게 됨으로써 그해 12월의 <당나귀그림자(최유진 연출, 세종문화회관별관)> 제작과 89년 12월의 재미무용가 <아이리스 박 공연(호암아트홀)> 기획을 끝으로 <시민소극장> 및 <앞서가는 멋쟁이 HQ>는 문을 닫고, 극단 <시민극장>은 91년 극단 <에저또>와 합동으로 <먼 훗날의 동화(최유진 연출)>를 공연한 후 96년 극단 <독립극장>으로 이름을 바꿔 97년 <세기말 버전(심철종 연출)>, <메카로 가는 길(박철완 연출)> 공연으로 명맥만 유지하다가 99년 김창화(물리72)에게 대표직을 넘긴 후 2001년부터는 원영애(식영82)가 대표가 되어 극단을 운영해오고 있다.

 

87년부터 종합광고대행사 오리콤의 이벤트팀장으로서 <이태원 축제(’88)>, <대림산업 50주년 기념행사>, <무당의 세계> 등 상업적인 이벤트 및 공연물의 총연출을 담당해오던 최유진은 91년부터 독립방송프로덕션사 <인풍비젼(대표 최상현)> 상무(’91~95)로 일하면서 <아메리카 꿈나무(’91 KBS, 장두이 원작, 임학송 연출)>, <달빛고향(’92 KBS)>, <어머니(MBC ’93)> 등의 TV특집극 및 CF광고를 제작하고, 이후 광고대행사 <네오콤코리아> 전무를 거쳐 공주영상정보대학교(현 한국영상대학교) 이벤트연출과 교수(’98~2018) 등을 역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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