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6년)

여생에 관하여 - 손자 우인이 백일과 할아비 개털

犬毛 - 개털 2016. 6. 14. 09:20

여생에 관하여 - 손자 우인이 백일과 할아비 개털

犬毛 趙源善

 

복은 오래오래 서로 공평하게 똑같이 나누어야 한다. 한꺼번에 혼자서만 실컷 즐기면 뒤탈이 난다.

 

난 1000원을 주우면 반드시 500원을 거슬러 흘린다. 500원을 주우면 300원을 흘리고. 남에게도 나처럼 즐거움을 나누어주려는 것. 이 또한 새로운 즐거움의 창조다.

아내가 다달이 각종 단체를 통해 세계 여러 나라의 아이들에게 보내는 기부금 총액이 내가 받는 연금월액의 십분의 일을 넘어선지 오래다. 나누는 게 즐거움이면 씩씩하게 나눈다.

태어난 지 백일 갓 지난 놈이 비행기타고 외할아버지를 보러 왔다. 첫 손자다. 표현할 수 없이 예쁘다. 같은 단지안의 아파트에 살던 딸애는 못내 우리의 제주이주가 섭섭한 눈치다. 아내는 서울을 자주 드나들지만 난 제주이주 후 서울 간 적이 없다. 아들부부도 같은 단지 안에 살았다. 아직 친 손자는 없고. 결국 날 보려고 어린 손자가 제주로 내려와 백일상을 다시 차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중요한 거다. 내게 손자의 가치와 손자에게 할아버지의 가치는 같아야 한다. 내게 딸의 가치와 딸에게 아버지의 가치는 같아야 한다. 나의 지론이다.

나를 가장 위하는 건 오로지 나와 아내뿐이라는 것. 부모님 일찍 여의고 자식 둘 다 결혼시키고 나이 육십 넘었으니 남은 인생은 우리 둘의 것. 둘만을 위해 둘만이 즐기며 둘이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며 살아야지.

핏줄이 당기는 건 인간의 도리겠지만 늘 옆에 끼고 가슴에 품어 오나가나 간섭하면서 또 간섭 받으며 매일을 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정을 나누는 게 피곤이고 그게 우리의 생활과 건강을 해치고 심적 부담을 받을 정도라면 피해야 한다. 선배와 친구들의 많은 경우를 보고 배워 참고했다.

보고 싶을 때 별러서 보러 가야하는 아쉬움이 보는 가치를 크게 하고 또 복을 길게 나누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도 그랬다. 신혼 1년 만에 분가하여 연년생 둘을 낳아 키우며 아내와 내가 얼마나 고생(?)했던가? 애들을 이고 지고 끌고 부모님을 뵈러가는 즐거움이라니. 제 자식은 제가 키워야한다. 부모가 자식의 새끼 - 손자를 보아주면서 또다시 뼛골이 휘어진다는 건 웃기는 일이다. 내 인생 자식들 위해 여태껏 바쳤는데 또 손자를 위해 나머지를 박박 긁어 바치라고? 난 못 해! 우린 그렇게 안 해!

나쁜 놈이라고? 괜한 자기변명하지 말라고? 허 허 허. 세상에 손자 싫어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봤소?

물론 각자 생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걸 행복이라 원하시면 그렇게 하시라.

 

꿈같은 일주일이 지났다. 눈망울 초롱초롱 할아비를 마주 바라보는 우인이. 오늘 이 놈을 보내는 날. 어쩌면 이따가 공항에서 뒤돌아서며 질질 울지도 모른다. 아니 울겠지. 하지만 이게 옳은 거다. 이렇게 살아야한다. 아내와 난 행복하다. 제주에 오길 백번 잘 했다. 저놈이 커도 제주할아버지를 분명히 기억하고 또 자주 찾아오겠지. 당연히.

내 딸 성은아! 내 손자 우인아!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아, 아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면 안 되니 아주 조심해야지. 끌끌.

(1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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