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집에서 - 고려대학교의 추억
犬毛 趙源善
안암 언덕아래
동경골목 끄트머리집
막걸리
그 맛.
자유와 정의와 진리를
버무려 익힌
안주
그 맛.
민주와 혁명과 투쟁이
살아 춤추는
술상
그 맛.
가신 엄마 가슴 보듬는
육십의 꿈속
젖꼭지
그 맛.
언제 어떻게 떠나도
영원히 기억할
고려대
그 맛.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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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모교 앞 골목의 단골집인 고모집을 찾는다. 일년에 두어번 가면서 단골이라하기가 좀.......
하긴 백발이 성성하여서도 잊지 않고 가끔 찾아간다는 정성 하나만으로 훌륭한 단골이지 뭐.
고모 얼굴이 핼쓱하다.
갑자기 주인이 옛날(20년전)의 권리금 1200만원만 돌려 주겠다며 가게를 빼 달라고 막무가내로
우기는 통에 몇 달을 마음 고생하며 다른 가게자리를 물색하던 중, 며칠 전에 다시 또 가게를
계속하라며 계약서를 새로 썼다나. 한시름 놓았다고.
내 가게가 이래보여도 나 혼자 20년의 전통을 잇는 고모집인데..............
언제나 조용조용 구수하면서도 무뚝뚝한 고모의 눈가가 촉촉하다.
사실 고모는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20여년이 지난 다음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다. 학번으로 치면
77학번이라니 내겐 동생 뻘 - 난 73학번이니까.
나야 뭐 고모 이전의 주인이나, 또 이전의 주인일 때(?) 이골목을 드나들던 고대생.
40년이 흘렀지만......이 골목 냄새는 변함이 없다.
말이나 글로는 표현 못할 아주 묘한 알싸한 감정.
학교 다닐때는 거의 매일이었고,
학교를 졸업하고 군인일 때도, 제대하고 직장에 다닐 때도, 연애 할 때도, 결혼하여 애를 안고서도,
하여튼 끊임없이 .....제자들을 고대에 입학시키고도, 또 해마다 고대극회후배들의 공연이 있을 때도,
요즘은 우리 73학번 입학40주년 기념행사(내년 10월)를 준비하면서도, 또 이번 달 우리과 정기모임도
바로 고모집에서 하자고 내가 우겼다.
우리 고대인들이여 잊지마시라!
아니 어찌 잊을소냐? 동경여관 골목 총각집 학사주점 고모집을.............
다 허물어지고 뭉개지고 지워지고 사라졌지만 아직까지 이름 그대로 명맥을 이어가는 마지막 한 집!
고모집!
안주가 싸고 맛나고 많이주고 아직도 외상주고 술이 맛나고 뭐 이따위 얘기는 안 하련다.
고모집은 무조건 우리들만의 정이 살아있는 집이다.
암튼 찌는 더위에, 후배랑 둘이서 모듬전 한 접시에 막걸리 4통먹고 - 물론 고모집 에어컨은 시원하다.
추억은 더 많이 먹고.............
고모집의 번영을 기원한다.
고모집 만세!
고려대학교 만세!
<2012년 8월 5일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