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2년)

참고, 참고, 또 참기

犬毛 - 개털 2012. 3. 20. 12:26

참고, 참고, 또 참기

犬毛 趙源善

 

 

백수 이전이나 백수 이후나 나는 살면서 웬만하면 허허거리는 편인데 그게 성질이 없다는 건 절대 아님. 참고, 참고, 또 참다가 한 번 뒤집어지면 어느 누구도 못 말린다는 아주 엄청난 비밀. 일단 터지면 회복불가능하게 완전박살을 내 버리기 때문. 그거 내 아내와 돌아가신 내 모친과 직접 사고를 당해 본 사람 외에는 아무도 모름. 왜냐하면 내 얼굴 겉껍데기가 너무너무 물러 터져 보이기 때문.

아무튼 그 참고, 참고, 또 참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아니 더 이상 못 참을 것 같아서 평생직장을 명예 퇴직한 상황. 그리하여 그럭저럭 벌써 7개월에 접어드는 백수생활.

 

결혼한 놈치고 아내랑 승강이해서 이기는 놈의 가정생활 순탄한 것 못 봤음. 나야 뭐 이미 사십대부터, 아내에게 이긴다는 미련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지만, 요즘 들어 슬슬 짜증이 오르는 까닭이 무얼까?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당연한 진리가 사그라진 이유가 뭘까?

배불러서? 속편해서? 시간이 넉넉해서? 행동이 자유로워서? 도대체 왜? 무엇 때문일까?

 

삼십년을 밖에서 돌던 놈이 집안생활하면서 다소 익숙하지 못하여 이것저것 문제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 아냐? 여태껏 등골 빠지게 온몸 바쳐 처자식 벌어 먹인 게 누군데? 중얼거리지 말고 어서 술상이나 봐 와.

뒤집어 생각을 안 해 본 것도 아님.

삼십년을 홀로 집안 생활하다가 멀쩡한 놈이 갑자기 영감으로 들어앉아 쉰 소리(?)를 해대니까 문제가 생긴다? 여태껏 눈물 마르게 온몸 바쳐 식구들 뒷바라지한 게 누군데? 구구로 입 꾹 다물고 있든가 아니면 끄질러 나가.

과연 누가 먼저 이해해 주어야 할까? 누가 더 서먹서먹하지? 누가 더 적응이 어려울까? 누가 더 힘들지? 누가 누구에게 애교를 부려야할까? 누가 누구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지? 누가 더 짜증날까?

퇴직한 남편? 터줏대감 아내?

 

다섯 끼 처먹으면 오지랄 새끼........ 세 끼 먹으면 삼식이 새끼........... 한 끼 자시면 어쩌고...........

아무리 농담이라지만 어느 오라질 연놈(?)이 이런 개수작을 읊었는지 분통 터짐.

하긴 뭐, 말이니까 나도 이리 용감무쌍하게 들이대고 읊지만. 이쯤에서 넋두리(?)는 그만 접어야 함. 백기를 비죽 들어 흔들 놈이 개소리는 뭘.

좌우지간 어떠한 경우라도 무조건 참고, 참고, 또 참아야(?) 할 것.

 

내일부터 외출을 늘리기로 함. 지난 삼십년 동안 그 바쁜 중에도 너무도 많은 시간을 아내에게 할애했으니 이제는 아내와의 시간을 좀 줄일 필요성을 느낌.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둘이 졸졸 붙어 다니다보니 아마 아내가 지겨웠던(?) 모양. 그렇다면, 아내이외의 남과 만나는 시간과 그리고 나 혼자만의 시간을 전보다 더 많이 더 길게 갖는 즐거움을 누리면 됨. 이건 어려운 일이 아님. 돈에 매이지 말고 술값 신경 쓰지 말고 누구 눈치 볼 이유도 없이 씩씩하고 경쾌하게 즐기기. 다만 건강에 적당히 주의할 것. 짜증이 쌓여 뒤집어지는 순간이 와서는 절대 안 됨. 아예 짜증은 키우지도 말기. 오케이.

 

그것 참, 백수로 펑펑 노는 것도 참 어려운 일.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왜 어떻게 하더라도 참고, 참고, 또 참기.

그나마 이 백수직장마저 명예 퇴직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함.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영원히 사랑할 것.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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