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곤명 여행기
犬毛 趙源善
“날자 잡았어요. 다음달 6일 저녁부터 닷새 동안 중국 곤명이에요. 거긴 항상 봄이래요. 거리가 가까워서 비행시간도 짧아요.”
불쑥 한마디 내던지면, 나는 그저 몸만 따라가면 그만이다.
이번 여행도 이렇게 아내가 다 계획하고 계약했다.
늘 그렇듯이 여행사의 팩키지 상품은 오며가며 하루씩 비행기에서 잡아먹는다.
그래야 여러 가지로 서로 서로 톱니가 맞아 들어가나 보다.
오후 4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서류를 받으니 우리가 단체 비자의 맨 앞이다. 미팅하기 전에 함께 여행할 팀의 인적 사항을 들여다보니 나이가 꼴찌. 5팀 부부 중에 제일 어리다. 이런 허 허 허.
미팅할 때 대충 살펴본 팀 전체의 분위기가 무거운 것 같다. 기분이 그런가?
딸아이 화장품 몇 개 면세점에서 인수하고 탑승해서 신문 뒤적거리다가 7시쯤에 이륙하고 금방 기내식시간. 항상 아내와 나는 서로 다른 걸 시켜 나눠 먹는 데 난 돼지고기와 밥이고 아내는 소고기와 스파게티. 소고기가 너무 질겼다. 신문을 본 까닭인가 눈이 아프다. 맥주 한잔 하고 잠시 잠을 청하는데 뒷좌석 경상도 아줌마들의 수다가 난리다. 억센 억양이 내 귀에 대고 말하는 것 같다. 네 시간여 동안 한 숨도 못 잤다.
창밖 아래쪽에 불빛이 보인다. 능숙하고 부드러운 착륙이다. 트랩을 내리는데 좀 썰렁하다.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입국장에서 단체 비자는 서류기재 순서대로 서야한다. 한참 기다려 일행을 줄 세웠다. 우리 부부가 1,2번이다. 상당히 빨리 수속이 끝나고 짐도 금방 찾았다.
가이드가 꽃다발을 하나씩 안겨준다. 곤명이 꽃의 도시란다. 조선족 3세라는 가이드는 키가 작은
편이고 웃는 얼굴이 귀엽다. 총각이라고.
15분 정도 이동하여 호텔에 도착. 방은 보통 수준. 욕조는 없고 샤워부스가 넓다.
씻고 나니 12시가 넘었다. 시차는 한 시간. 아내 손을 한번 잡아주고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는다. 금방 아내는 코를 곤다. 항상 아내는 아무데서나 참 잘 잔다. 얄밉다. 좀 춥다. 침대바닥이 이상하게 차다. 난방기가 소리만 요란하다. 자는 둥 마는 둥 새벽 무렵 잠깐 잠들었다가 웬 “대통령 부정선거”에 내가 말려든 이상한 개꿈을 꾸다가 깨어 일어났다.
첫날.
날씨가 좋다. 바람이 썰렁하다. 우리는 따듯한 봄옷을 준비했는데. 이게 좀 실수인가 보다.
창밖에 아파트인지 신축공사장이 보인다. 대충 너저분하다.
아침식사는 뷔페식. 날아가는(?) 쌀밥에 계란 프라이, 구운 소시지2개, 토스트 한 조각, 주스 등을 골라서 대략 먹었다. 그런대로 다행이다. 해외여행은 첫날음식이 중요하다. 전혀 입에 맞지 않으면 기간 내내 고생하기 때문이다. 중국본토인들의 억양이 무척 세다. 음식의 낭비버릇이 맘에 안 든다. 상당히 많은 양을 가져다가 시끄럽게 떠들면서 먹고는 그냥 남기고 가버린다.
이 호텔에서 3박할 예정이다. 짐을 들고 다니지 않아 편하다. 아내가 꾸물거린다. 우리 돈 1000원을 베개 옆에 놓고 나오니 일행 중에 제일 늦게 나왔다. 시간약속은 지켰지만 그래도 좀 미안한 감이 든다. 버스로 이동한다.
가이드가 귀엽게 생겼다. 살짝 연변 억양이 섞였다.
중국은 대략 14억 인구(공식적으로 13억). 56개 민족. 그중 한족이 92%. 열두 번째가 조선족이란다. 23개 성. 4개 직할시. 특별행정구역 2개......어쩌고저쩌고....가이드의 목소리가 잘 안 들린다. 운남성은 닭 모양의 중국 지도상 서남쪽 내륙으로 닭의 궁둥이 위치. 해발 0미터부터 6000미터 사이에 있다고. 4800만 인구. 우리나라면적의 4배 크기.
곤명시는 해발 평균 1800미터. 영상 2도에서 38도 사이. 봄의 도시. 꽃의 도시란다. 지나치는 길가의 광고 입간판이 대형이다. 우리나라 고속도로변에 설치된 크기의 입간판이 시내 길가에 즐비하다.
원통사.
곤명시내에 있으며 가장 오래된 불교 사원. 당나라시대에 지어져 1200년의 역사. 여러 번 보수 개축. 지금도 보수 중이다. 팔각정으로 건너가는 구름다리 앞에 소원을 비는 촛대가 커다랗다. 촛불이나 향불을 지펴놓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다. 옷차림이 구구각각이다. 연기가 자욱하고 냄새도 매캐하다. 커다란 사각연못의 중앙에 팔각정이 있고 연못의 사방에 좌우 대칭으로 건물이 에워싸고 있는 형태가 특이하다. 아주 큰 규모는 아니지만 마치 한 폭 그림처럼 아늑하다.
바로 근처에 취호공원.
취호는 서호를 본 따서 만들었다고. 서민들이 많이 모여 즐기는 곳. 제법 큰 호수인데 바다갈매기가 엄청나게 많다. 모두들 갈매기에게 빵을 뜯어주면 그놈들이 그걸 받아먹느라 난리법석이다. 여기저기 정자나 공터에는 고전 악기를 다루는 팀, 노래하는 팀, 춤이나 태극권 하는 팀 등이 자유롭다. 아기들 어린이들 젊은이들 중년 장년 노인들이 다양하게 섞여 아주 복잡하다. 보트도 있으며 간단한 놀이기구도 있어서 가족단위로 즐긴다. 차림새로 보면 남루하게 보이는 데도 모두 다 행복한 표정이다. 길가에 딸기장사가 있는데 딸기 한 개가 아이주먹만큼 크다. 공원이 좀 지저분한 느낌이 들었지만 시민들이 편안히 쉬는 기분과 눈치 보지 않고 즐기는 여유와 원만한 자유스러움이 호수면 위에 잔잔히 깔려있었다.
점심은 중국 현지식. 음식점 규모가 대단하다. 우리나라 중국음식의 코스요리 같이 10여 가지가 차례차례로 나온다. 좀 비릿하지만 입맛에 맞는 것도 있다. 괜찮다. 이빨 빠진 그릇은 별로 신경 쓰지 말란다. 나이든 그릇이기 때문에 거기에 담아 먹으면 오래 산다고.
연세가 가장 많이 드신 최 형님을 우리 다섯 팀 열명의 족장으로 추대하기로 했다. 우리 여행의 대장인 셈이다. 두 팀이 서로 아는 사이. 두 팀은 동서지간. 우리가 한 팀. 도합 다섯 팀의 조촐한 여행이다.
중국 사람들이 못해보고 죽는 것이 세 가지란다. 자기나라 구석구석 다 못 가보고 자기나라 음식 가지가지 다 못 먹어보고 자기나라 글자 한 자 한 자 다 못 써보고.
시내 외곽의 서산. 용문. 곤명호.
꼬불꼬불 오르는 길이 2차선이라 협소하다. 주차장에서 다시 리프트를 타고 30여분 정도를 오르는데 까마득히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곤명호수가 참으로 장관이다. 아내와 살짝 기념 뽀뽀를 한번 했다. 리프트에서 내리니 자동 촬영된 사진을 보여주며 사라고 한다. 4000원.
운남성 안에서 곤명은 몇 군데 안 되는 평지라고(해발 1800 미터). 길이 40키로 미터 폭 8키로 미터로 중국에서 6번째로 큰 담수호수. 수심은 그리 깊지 않아 7-8 미터.
서산에 오르니 해발 2280 미터라는 석주가 보인다. 우리는 위에서부터 용문석굴을 향해 아주 가파른 계단을 내려간다. 절벽을 왼쪽에 끼었다가 오른쪽에 끼었다가 아무튼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도로와 호숫가의 집들 그리고 푸른 곤명호의 모습이 절경이다. 이 돌길과 돌굴 들을 깎아 다듬은 재주가 또한 놀랍다. 야사로 전해지기는 72년이나 걸렸다고.
거슬러 올라오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다. 말소리는 와글와글 표정은 즐거운 데 동작은 느긋하다. 옷차림이 참으로 재미있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거의 꼬질꼬질한 구식 양복차림이고 아주 어린 꼬마아이들도 있으며 젊은이들의 복장만 현대판이고 중 장년층도 트레이닝복이나 낡은 점퍼, 양복윗도리에 허술한 운동화 등등 중구난방.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이들은 입는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단다. 그저 걸치기만하면 되며 모양을 내지 않는다는 것. 마음 느긋하고 자유롭게 단지 자기만 행복하면 된다는 것. 음식도 여러 가지를 실컷 먹고 남기는 게 대접하는 측이나 초대받은 측 양쪽의 예의라고.
겉으로 드러난 석굴의 규모는 그리 대단치 않다. 드디어 용문에 도달한다.
문설주에 달랑 거꾸로 붙은 여의주를 누구나 다 한번씩 만지며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므로 반짝반짝 윤이 난다. 나도 만진다.
길옆에 호랑이 상의 입속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뺀다. 호랑이의 기를 가져오면 재물복이 붙는단다. 물을 가득 채운 큰 항아리 속에 돌 거북이 보인다. 동전을 던지며 운을 시험하기도 한다.
대단한 절벽에 대단한 실력으로 돌을 깎아 대단한 길과 굴을 만들었고 내려다보이는 곤명호수 또한 대단한 절경이었다.
기념품가게에서 벽걸이용 문 장식을 하나 샀다. 50000원 달라는 걸 20000원에 깎음. 좀 비싼듯하지만 주조물이니 그만한 가치는 있으리라.
곤명 꽃시장.
1999년부터 세계꽃박람회를 해마다 개최한다고. 향기가 진동한다. 서울의 작은 재래시장 정도가 온통 꽃가게다. 휘황찬란하다. 중국 사람들이 꽃을 좋아한다는 사실. 옆에 조화가게 또한 대단하다. 선물용으로 향낭을 몇 개 샀다.
발마사지를 받으러 간다. 동남아와 지난겨울 해남도의 경험으로 과히 기대하지 않는다. 아내와 같은 방에 들어가 나는 처녀 아이가, 아내는 총각아이가 마사지를 한다. 영어는 전혀 모른다. 간간이 한국어를 쓴다. 아파? 시원해? 살살? 반말을 찍찍 던지며 상당히 열심히 한다. 처녀아이는 땀을 송송 흘린다. 총각 놈은 좀 덜렁덜렁 하는 것 같다. 아내가 아프단다. 아파요? 시원해요? 살살해요? 라는 경어를 가르쳐준다. 저희들끼리 중국어로 중얼거린다. 기분 나쁘다.우리도 우리끼리 한국어로 중얼거린다. 17세에서 19세 정도로 보인다.
저녁 역시 현지식. 음식점은 항상 대규모. 엄청나게 크다. 중국식은 열명이 둥그런 식탁에 둘러앉아 회전판을 돌려가며 각자 떠먹으니까 서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면서 먹게 되어 금방 가까워진다. 준비해간 소주를 내놓고 족장님 형님 아우 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술판 분위기가 좋다.
둘째 밤은 비교적 잘 잤는데 여전히 좀 춥다. 아내도 나도 꿈자리는 또 뒤숭숭하다. 이륙직전 교회의 정 장로님이 위독하시다는 문자를 받아서 그랬을까? 아내와 함께 걱정을 해 본다.
구향동굴까지 약 2시간 정도.
사 오십 분후 고속도로에서 벗어난 중간 길 이십여 분간의 공사구간은 흙먼지가 날리고 몹시 흔들거린다. 개천을 오른 쪽에 끼고 들면서 길이 좀 괜찮다. 시골이든 도시든 도랑이나 하천, 개천은 하나같이 물이 더러워 보인다. 마을을 관통하기도 한다. 논밭들은 거의 계단식이다. 이따금 동네근처의 좀 넓은 밭도 다 조그맣게 구불구불 나누어져있다. 신식농사가 아닌 구식 농사다. 트랙터 같은 장비는 안 보이고 물지게 같은 걸로 나르며 대부분 곡괭이로 밭을 다듬고 있다. 가끔 지나치는 차들 중에는 개조한 소형삼륜차들이 많다. 반시간쯤 후에 동굴입구에 도착.
장식된 꽃 화단과 무척 웅장한 대문을 들어서니 아래쪽으로 까마득히 계곡이 내려다보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배에 오른다. 계곡을 막아 놓았다. 수직 절벽 사이로 좁은 계곡을 보트를 타고 저어가며 구경한다. 왕복 20분 정도. 양쪽 돌벽과 위로 보이는 깎아지른 절벽 숲의 풍경이 기가 막히다. 배에서 내려 드디어 계곡 옆의 구향동굴로 들어선다. 뒤돌아 내다본 입구가 햇빛 속에 찬란하다.
6억 년 전에 백운암으로 이루어진 중국 최대의 종유석 동굴로 백여 개의 동굴이 있다. 그 규모가 엄청나다. 종유석모양이나 폭포 같은 굴속의 내용물들은 우리나라의 환선굴이나 대금굴 비슷한데 그 크기나 넓이 량 등이 수백 수천 배에 달하는 것 같다. 돌이나 대리석으로 잘 다듬어진 길이 소형 리어카가 지나다닐 만큼 시원시원하다. 우리나라는 머리를 숙이고 몸을 줄여 지나다니는 좁은 공간인데 이 곳은 천정까지의 높이와 좌우 폭들이 수십 미터에 이른다. 폭포도 크다. 굴속이 아닌 바깥 같은 크기. 쌍폭이다. 넓이가 오천 평이나 된다는 아주 대단한 광장.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너무 심할지 모르지만 개미와 킹콩을 비교한다고나 할까?
종유석의 크기 역시 웅장하고 크다. 꽤 커다란 무대가 만들어져서 원주민이 공연을 하고 관람객과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많다. 굴의 규모가 워낙 어마어마하니 환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나보다. 흡연을 해도 말리지 않는다. 사진도 번쩍번쩍 자유롭게 찍는다.
신기한 사실은 수많은 쓰레기통들이 여기저기 놓여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 깊은 동굴 속에 일정한 거리마다 쓰레기통을 놓아두다니. 담겨진 쓰레기를 수거해 가는 인력을 상상해 본다. 허 참.
내려간 만큼 다시 삼백 수십여 개의 계단을 오른다, 여기에 가마꾼들이 있다. 우리 돈 만원이라던가? 가운데 사람을 앉히고 앞뒤에서 가마꾼이 어깨에 끈을 걸어 들고 올라가는 것이다. 굴속에서 가마와 그냥 걷는 사람이 함께 지나칠 수 있는 길이니 얼마나 넓은가?
아내와 손잡고 계단의 수를 헤아리며 몇 번을 쉬면서 도란도란 얘기를 주고받는다. 무슨 얘기였는지는 지금 생각나지 않는다. 허 허 허.
몇 개의 가마가 우리를 추월해 올라간다. 돈 버는 것도 좋지만 중국 남자들은 힘도 좋다 참.
굴 밖으로 나온다.
다시 리프트를 타고 산을 넘어 처음의 입구로 오는 데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또 멋지다. 왼쪽 아래로 까마득히 처음 들어간 구향동굴의 입구가 보인다. 우리는 또 뽀뽀를 한번 한다. 뒤에서 보거나 말거나 리프트를 탈 때마다 늘.
식당으로 한 이십분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서서히 돌 숲이 보이기 시작한다. 좌우로 나타나는 돌 숲의 모습이 경이롭다. 점심은 오리구이라고. 속이 좀 좋지 않아 가볍게 설사를 한다. 정로환을 먹는다. 술 때문에 늘 장이 나쁜 나는 여행할 때마다 한번 씩 이 짓(?)을 한다.
식당 옆 매점에서 서부 카우보이모자를 샀다. 2000원. 값도 저렴하고 품질도 좋다.
석림에 들어선다.
2억 8천 만 년 전에는 이곳이 바다였는데 지각변동으로 인해 바다 속 암반들이 겉으로 드러난 것. 소석림에서는 전동차를 타고 이동한다. 나무숲이 아니라 바위로 이루어진 숲이다. 그것 참.
세상에 이럴 수가. 광대하게 펼쳐진 바위 숲의 장관에 기가 막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대석림은 걸어 들어간다. 소석림에 비해 바위가 아주 크고 오밀조밀 붙어있어서 들고나는 길이 복잡하여 미로다. 바위산이다. 자칫하면 길을 잃는다고. 팔각정 전망대까지 오르는 길이 참 경이롭다. 죄 많은 사람은 밑으로 지나가지 못한다는 허물어져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거대한 바위 덩어리. 두들기면 북소리 나는 바위. 차렷 자세로 옆으로 잘 통과해야하는 바위골목. 나는 여기서 모가지가 두꺼워 그만 걸리고 말았다. 바위침대와 각종 동물모양의 돌 등등. 좌우지간 사방이 다 돌 돌 돌이다.
정말 대단하다.
돌아오는 길은 고속도로의 진입로를 막아 놓았다. 아무 설명도 없다. 중국은 그렇단다. 차를 되돌려 국도로 간다. 아마 사고가 난 모양이다.
짝퉁집에 들리다. 비교적 물건이 제법 깔끔해 보이지만, 옷 지갑 벨트 가방 시계 안경 골프채 등등 그러나 자세히 뒤집어보면 바느질 마무리와 세심한 뒤처리가 역시 좀 다르다. 값은 싸다.
버스 안. 족장 부인께서 재미난 Y담을 하신다. 그 중 흥부와 놀부의 “꿀물과 똥물”이야기는 정말 너무 웃겨서 모두 배꼽을 잡았다.
북한한약을 파는 곳에 잠시 들어간다. 어둡고 방안에 별 장식도 없이 북한 물건들만 적당히 진열했다. 북한 화폐의 김일성 사진으로부터 설명해가는 아주 기계적인 억양과 태도다. 장사꾼으로서 물건을 잘 팔기는 틀렸다. 우황청심원과 안궁우황환인가를 주로 선전했는데 진짜 야생 사향을 넣었다는 주장. 아무도 구입하지 않는다. 딱하다. 그래도 북한 안내원은 떠나는 우리 버스를 향해 밖에 나와 손을 흔들어 준다. 왜 그런지 눈시울이 찡하다.
저녁식사는 북한식. 연변동포 식당에서 돼지고기 수육과 된장찌개, 김치를 먹었다. 소주 몇 잔과 족장님이 중국술을 한 병 사셔서 얼큰하게 마셨다.
이틀을 좀 춥게 잔 것 같아 오늘 밤에는 두개의 침대를 밀어 붙이고 이불 한 개를 아래 더 깔고
아내랑 꼭 끌어안고 한 이불 속에서 잤다. 따듯하다. 아 참, 진작 이렇게 잘 걸. 허 허 허.
새벽에 일어나 컵라면을 하나 먹는다. 느끼한 음식만 먹다가 따끈하고 얼큰하게 훌훌 들이키는 이 국물 맛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다. 오늘아침에는 체크아웃 해야 한다. 짐을 꾸려 놓고 아침식사를 한다. 난 간단하게 조금만 먹었다. 아내는 씩씩하게 잘 먹는다. 그래서 아내가 예쁘다.
곤명의 택시는 안이나 밖에 동물이 그려져 있으며 번호가 붙여져 있다고. 이를테면 토끼19, 호랑이34 이렇게. 분실물이 나 범죄 행위 등이 있을 때 기억하기 쉽게 모든 택시에 그림과 고유번호가 주어져 있다. 운전수가 좋은 일을 하면 상점이 주어져서 나중에 교통위반을 하면 지워주는 제도가 있다나. 현재 곤명 시내는 아주 부산하다. 여기저기 뜯어 고치고 파헤치고 새로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아마도 금방 발전하리라 기대된다.
금전으로 향한다. 가깝다.
청나라 초기 무렵 유명한 장군 오삼계가 지어 살았다는 궁전이다.
높이와 폭이 각각 7미터 가량으로 총 250톤의 무게. 구리로 지었다. 노랗게 번쩍여서 금전이라 했다는데 지금은 시커멓다. 오삼계는 무예가 출중하고 키가 아주 크고 힘이 센 명장이었는데 황제와의 알력으로 내시에 의해 독살 당했다고. 그가 몹시 총애했던 애첩과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만화로 그려져 있는데 마지막 장에 개에 물려서 옷을 찢기는 장면이 이채롭다. 그가 사용했다는 엄청난 크기의 창과 칼이 보존되어 있다. 사후에 도교신도들이 도교사원으로 만들었다고. 뜰에는 묘한 나무가 한 그루. 건드리면 간지럼을 타는 나무다. 정말 건드릴 때마다 바람도 없는데 나무가 흔들린다. 참 신기했다.
나오는 길에 기념품 가게에 멈춘다. 한 개 10000원 달라던 목걸이를 8000원 4000원 하더니 급기야는 세 개에 10000원. 그야말로 아내는 흥정의 귀신(?)이다.
근처에 운남 박물관.
안내원이 한국어에 능통하다. 영사실은 수리중이라며 먼저 공룡표본실로 데려가 설명한다. 다른 방에서는 목 조각, 옥, 도자기, 돌, 골동품, 그림 등등에 관해 설명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곳에 진열된 물품을 판매할 수도 있다는 것. 마지막 방에는 파는 물건이 많다. 박물관에서 각국의 언어에 능통한 안내원을 상주시키며 장사를 한다는 것이 참으로 이색적이다.
음식이야기. 중국에서 다리 달리고 못 먹는 것은 의자 밖에 없다고.
모기 눈알 요리는 눈알이 너무 작아서 채집할 수 없으니까 모기를 잡아먹은 박쥐의 배설물에서 소화되지 않은 눈알만 골라 먹는다나.
살아있는 원숭이를 구멍 뚫린 의자에 거꾸로 묶어놓고 뇌를 갈라 구멍으로 나오는 골수를 먹고.......
또 살아있는 오리를 불판위에 러닝머신처럼 뛰게 하여 오리발바닥을 익혀서 발바닥 요리를 먹는다니 이 얼마니 해괴한 짓인가? 할 말이 없다.
점심은 중국 현지식. 다른 날과 다름없다. 잘 먹었다. 이번에는 아내가 속이 좋지 않다한다. 은근히 걱정 되었지만 정로환을 건네주고 량을 줄여 조금만 먹으라고 했다.
운남 민속촌.
20분 이동했을까? 뒤쪽으로 그리 멀지 않게 서산이 보인다.
56개 민족 중 약 20여개 민족의 촌락을 특성에 맞게 그대로 꾸며놓고 거주하게하며 공연장시설까지 갖추어 놓은 곳. 각 민족의 주거 및 생활풍습이 잘 드러나 있으며 그 크기가 방대하다.
입구부터 실물크기의 하얀 코끼리 조각상들이 이채롭다. 민속촌의 중앙에는 큰 호수가 있다.
잘 꾸며진 불당 앞을 지나며 사람들이 종을 친다. 세 번 울리면 복을 받는다고. 지나는 사람들이 줄서서 치는 바람에 하루 온종일 종소리가 뎅뎅거린다.
태족의 정교하면서도 거대한 불탑을 본다. 줄줄이 매달린 풍경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호수를 가로질러 작은 흔들 다리를 건너기도 하고 꼬불꼬불 여러 민족들의 마을을 구경한다.
기독교를 믿는 어떤 민족도 있어서 아내는 교회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와족은 초가집을 짓고 산다. 물소를 숭상한다. 촌락 앞에서 청년이 통나무 북을 두드리며 노래한다. 잘 생겼다. 역시 아내는 또 포즈를 취한다. 안으로 들어가 공연을 구경하는데 춤과 노래와 줄타기와 특이한 구애장면을 본다. 관람객 중에 청년이 하나 불려 나간다. 대나무를 건너뛰는 춤을 따라서 한다. 나도 젊었더라면 호기롭게 나가서 줄타기도 하고 원주민 아가씨를 번쩍 안아들고 타잔처럼 줄에 매달려 볼 텐데........
수족촌을 지나다가 원주민의 집으로 들어간다. 이층 목조 초가지붕인데 계단을 오르니 상당히 넓다. 가운데를 거실로 비워놓고 입구 양쪽을 제외한 옆쪽은 칸칸이 다 방을 만들어 침대 비슷한 것이 놓여있다. 거실 가운데 시렁을 만들어 각종 기구와 말린 고기, 곡식 등을 매달거나 올려놓았다. 그 아래 화덕이 있으며 우리는 거기 둘러 앉아 원주민 처녀가 구워주는 호떡 같은 것을 사 먹는다. 꿀을 찍어 먹었는데 참 맛있다. 시집 안 간 18살 처녀란다.
백족의 공연을 잠시 본다. 바탕 옷은 흰색이고 그 위에 알록달록한 화려한 문양의 옷을 입고 모자를 썼다. 경쾌한 몸놀림이 가볍다. 집의 벽도 온통 하얗다. 거리도 하얗다.
이족 입구의 큰 문에는 양쪽에 술 항아리가 놓여있다.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광장을 지나는데 입을 벌린 커다란 호랑이의 머리가 있다. 모두가 술을 즐겨 집집마다 술을 담근다고. 주점에 들어가니 토방이다. 우리는 나무의자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호로병에 담긴 곡주를 한 병 사 마셨다. 달짝지근 만만치 않게 독하다. 뒤따라 나온 주모가 술잔이 하나 없어졌다한다. 우리는 가지고 나오지 않았는데. 가이드 말이 한국 사람들이 자주 그 짓(?)을 하는 모양이라고. 한번 찔러 봤나보다. 기분이 좀 언짢다. 왜들 그러고 다니는지.
코끼리 쇼를 본다. 축구도하고 농구도 하고 관람객 남여를 불러 가슴과 배를 밟는 시늉도 한다. 보통 흔히 보는 쇼라 식상하다. 커다란 공연장 앞을 지난다. 이 공연장은 여러 민족이 함께 특징적 민속공연을 공동 공연하는 장소라고. 일년에 몇 번.
이외에 우리가 둘러보지 못한 많은 민족의 촌락들. 시간이 부족하여 참 아쉽지만 할 수 없는 일.
호수를 가로지르는 큰 다리를 건넌다. 저 멀리 호숫가에 이국적인 건물들이 보인다.
기념품가게가 죽 늘어서 있다. 아내는 또 토속 목걸이를 골라 값을 뭉텅 깎아내린다.
입구 바깥쪽에 오백년 묵은 엄청난 나무들이 두터운 몸통을 자랑한다. 키는 위로 크지 않은데 옆으로 꽉 들어찬 모양이 스모선수같이 보인다.
저녁식사는 버섯 샤브샤브. 가지고온 모든 술들을 털어 놓고 마신다. 가이드가 중국술을 한 병 사는 덕에 기분 좋을 정도로 마셨다. 모두들 여행의 끝머리를 아쉬워한다. 저렴한 비용에 볼거리도 충만하고 기후도 온난하고 이동거리도 짧고 프로그램 진행도 능숙하여 아주 만족하다.
운남영상가무쇼 "Dream of Yunnan"을 본다.
극장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데 무대의 크기가 대단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조종사가 조난을 당해 원주민의 도움으로 우정과 사랑을 나누고 살아나서 귀향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가무극.
오페라 형식 비슷하다. 간간이 마술과 기예가 곁들여지며 원주민과의 민속춤 노래 우정 사랑 등이 아름답고 장엄하게 표현된다. 초현대적인 조명 시설과 음향활용 그리고 무대를 자유자재로 조작 활용하는 기법이 흥미롭다. 등장과 퇴장방법도 무대 위, 아래, 옆, 앞 등 다양하다. 백여 명에 가까워 보이는 출연진도 거대하고. 감미로운 노래와 음악 춤 연기가 어우러져 볼 만하다.
산과 물과 꽃과 새, 그리고 거기 어우러지는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평화의 세상! 삶은 영원히 아름다운 것이라고 입을 모아 노래한다. 감명이 깊었다.
공항으로 이동한다. 곤명거리의 가로등은 원기둥 형태의 꽃등으로 특이하다..
아쉬움을 남기고 가이드와 이별한다. 단체비자 출국수속은 간단했다. 면세점에 잠시 들러 직장동료들에게 줄 작은 선물을 구입한다. 면세점이 인천공항에 비해 아주 초라하다.
우리 국적 비행기를 타면 좌우지간 무조건 반갑다. 부드럽게 이륙했다.
호박죽 한 술 뜨고는 눈을 감고 생각한다.
중국은 모든 것이 다 크고 많고 넓다. 그리고 느릿느릿 완만하면서도 적당히 흘러간다. 국민 각자 나름대로 자기처지에서 행복을 느낄 줄 안다. 밑바닥 깊숙이 음흉하고도 엄청난 저력을 꾹꾹 눌러 감추고 있다. 이제 슬슬 마각을 드러내 조금씩 휘젓기 시작했지만.
아무튼 이겨야 한다. 작은 땅 작은 인구라고 우리가 기죽을 필요는 없다. 전 세계를 통해 최고로 두뇌가 우수한 우리민족 아니더냐? 항상 자신을 가지고 정정당당히 맞서서 중국을 발로 딛고 씩씩하게 일어서야한다고.
<090210>
*참고: 사진은 그 양이 많아 싣지 않고 플래닛에 갈무리 해 두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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