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2년)

명함

犬毛 - 개털 2012. 6. 5. 16:04

 

명함

犬毛 趙源善

 

 

백수 1년 여 만에 할 수 없이 명함을 만들기로 한다.

 

학교에 다닐 때는, 그저 만들어 주니까 가지고 다녔지만 내가 뭐 누구에게 명함을 주는 성질도 아니고 또 직업도 직업 나름이지 선생이 무슨 명함이 필요한 가 말이다.

그런데 은퇴한 이후로 만나는 놈마다 “요새 뭐하니? 명함 한 장 줘 봐.” 하는 통에 미칠 지경이다. 대단치도 않은 것들이 제각각 다 똑같이 무슨 대표이사사장이라고 적힌 명함 한 장씩 건네면서 네 것도 달라니..... 나 원 참 아니꼽고 치사하고 메스껍고 더러워서......

그래, 그래 만들면 될 것 아니냐.......

결국 결심하고 단숨에 초안을 써내려 간다.

 

 

    글, 술, 여행을 좋아하는 자유인

 

                  

                    개    털           조     원     선

                    犬    毛           趙     源     善

                                        Cho   Won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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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집 : 장미의 피. 개털 1.

 

 

집 전화 필요 없고, 주소도 필요 없고,

그 다음에는 더 써 넣을 게 없으니 됐다. 간단하구나. 이런 젠 장.........

 

아내 몰래(?) 개 끌고 산책길에 동네 인쇄소에 명함을 맡긴다.

“종이 질이 좋고 코팅처리가 어쩌고..... 500장 300장 200장......2만원, 2만 5천원, 3만원........”

“아 됐네, 이 사람아! 개털이라니까! 2만 원짜리로 대충 글자나 안 틀리게 해 주시게나.......”

“어? 정말 개털이시네요......하 하 하 .........”

 

이제부터는 명함 달라하면 군말 없이 한 장씩 씩씩하게 건네주련다.

“이게 뭐냐? 너 그냥 노냐?” 하고 물으면

“이 자식아! 한글도 모르냐? 글꾼, 술꾼, 길꾼이라니까! 자유인! 개털이야 개털! 됐냐? 히 히 히.....”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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