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 전봇대 犬毛 趙源善 그저 멀건이 서 있던 건 아니었지 연탄재와 달고나와 붕어빵과 솜사탕이 스쳐지나 식모, 자취, 월세, 봉제, 가발, 과외, 신문, 우유, 미용, 용달, 일수 들이 덕지덕지 배고픈 오만 견공 철철 넘치는 영역표시와 서러운 주당들 웩웩 거린 토사물까지 달동네 하늘에 줄줄이 켜켜이 새카.. 詩 (2010년 6월-12월) 2010.12.14
난청 난청 犬毛 趙源善 성했을 때는 듣기 싫은 소리 안 들으려고 귀 막았는데 상하고 나니 안 들리는 소리 궁금해서 정말 답답하다 아픔도 없이 그저 아무 때나 웅- 웅- 소리만 되울리니 손 떨려, 말 더듬어, 눈 흐려져, 귀까지 어쩌라는 거여? 탐내지 말고 욕하지 말고 흘기지 말고 듣지도 말라네. <1012> 詩 (2010년 6월-12월) 2010.12.13
상견례 상견례 犬毛 趙源善 일면식 없는 사이에 눈에서 꺼낸 딸과 가슴에서 캐낸 아들을 바꾸면서 -부족한 자식입니다 -그저 둘이 좋다니 더 저울질하지 맙시다 -밉던 곱던 보듬어 안아야지요 뭐 -그럼요 네 네 허 허 허 이제부터 무시로 술 한 동이 지고 와 등걸에 걸터앉아 개울 건너로 한 잔씩 권하자며 서로.. 詩 (2010년 6월-12월) 2010.12.13
욕질 욕질 犬毛 趙源善 들풀의 단물만 실컷 빨고 나자빠졌던 송충이들 보고배운 게 겨우 그 짓거리뿐이야 섣달 막판 쯤 부스스 깨어나 강시처럼 좌판 위에 죽 늘어서서 찧고 빻고 치고 박고 제 그릇 밥알 챙기느라 정신없으니 바다 섬 강 뭍 산 들 온 천지에 하얀 한 숨이 펑펑 파편으로 쏟아지는 데 정말 뭐.. 詩 (2010년 6월-12월) 2010.12.10
수염 수염 犬毛 趙源善 세상 모든 남자들이 아침마다 아무 생각 없이 밀어버리는 그 것 적어도 하루 한 번씩 제 얼굴에 자라나는 인격을 꼭 확인하라고 신께서 턱 밑에 심어 놓으신 싹. <1012> 詩 (2010년 6월-12월) 2010.12.06
문단속 문단속 犬毛 趙源善 빗장 쳐진 내 자물쇠 흉물처럼 녹슬었다 가져갈 무엇 하나 있지도 않으면서 왜 그랬을까 이제부터 문 열어놓자 비바람 눈보라 들이쳐도 좋아 늦게라도 철들어 다행이야 썩지만 말자. <1012> 詩 (2010년 6월-12월) 2010.12.04
연필 연필 犬毛 趙源善 그제는 깎다가 부러뜨리고 어제는 쓰다가 부러뜨리고 오늘은 놓쳐서 부러뜨리고 내일은 어떻게 부러뜨릴까. <1012> 詩 (2010년 6월-12월) 2010.12.04
시종始終 시종始終 犬毛 趙源善 손 안 닿는 등허리 살금살금 간지러운 게 사랑의 처음이고 투덜투덜 중얼거리며 벅벅 긁어주는 게 사랑의 마지막이다. <1011>* 詩 (2010년 6월-12월) 2010.11.30
체벌 체벌 犬毛 趙源善 왼뺨 맞고 오른뺨 대주다가 입 찢어지고 겉옷 벗어주다 속옷까지 빼앗겨 알몸이다 손자새끼 물고 빨다가 수염 몽땅 뜯기고 자식새끼 끼고 돌다가 다 털리고 알거지다 사랑과 아량과 관용이 후회와 한탄과 원한이 되고 토닥토닥 둥글둥글 보듬고 쓰다듬어 더불어 사는 세상은 옛날 .. 詩 (2010년 6월-12월) 2010.11.29
일기 일기 犬毛 趙源善 토요일. 아침에 아내가 떠났다. 아내 친구가 골절상을 당해 한 달 이나 미뤄졌던 이집트여행이다. 카메라와 충전기, 비상약과 마스크, 컵 라면과 사탕, 껌 등 몇 가지 챙겨주었다. 물론 금일봉도 주었다. 출근하면서 공항버스 정류장에 차를 세워 가방을 실어주고 슬쩍 한 번 안아주고 .. 詩 (2010년 6월-12월) 2010.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