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허 허 허 허
犬毛/趙源善
엊그제 국민학교 동창회
나 술 거나하게 젖어 들어와 내 깐엔 아름다운 추억을 안주로
스물다섯 살 딸년과 마주앉아
신나서 삼차로 술을 마시는 데.
장마 비가 억수로 쏟아져 개울 넘치면
다리 없는 촌 동네는 물이나 빠져야 겨우 학교를 갔지
기차표 고무신 손에 들고 책 봇짐 허리에 졸라매고
십리길 이 십리길 개울건너 산길 논길 둑길을 걸어
전교생이라야 서른 명 두 반씩 육학년 해서 삼백 육십 모두
<미국의 원조>라 써진 분유가루 국물이나 찐 우유덩어리
옥수수가루 꿀꿀이 죽이나 노란 빵 한 덩이가 점심
사시사철 쥐꼬리 잘라서 내고
시커먼 가루분탄 쏘시개로 솔방울도 따러 다녔지
회충약 먹으면 벌레 숫자까지 헤아렸어
송충이 잡으러 솔밭에도 갔었고
메뚜기도 잡아서 큰 가마솥에 볶아먹고
실습지 밭에 심은 옥수수와 감자와 고구마도 삶아 먹었지
벼이삭 주우러 전교생이 들판을 헤매고
소풍날이라야 찐 계란 한 알 사이다 한 병 삶은 밤 몇 개
보물이라도 하나 찾으면 그건 왔다 땡 지우개 한 개가 상품
운동회 날 쪽지달리기는 재수 좋아야 일등이고 공책 한 권이면 으쓱으쓱
이등으로 백두산연필 한 자루면 몽당 되어 손에 쥐어지지 않을 때까지 썼지
동아전과 한 권이 그렇게도 부러웠고
난닝구 한 장으로 한여름 나고 나이롱 양말 한 켤레로 한겨울 났어
때 까맣게 낀 모가지는 봄이나 되어야 씻는 거고
손톱 발톱도 가위로 깎았다니까
지게질에 소꼴 베는 건 일도 아니었어
병들고 석유 사러 다니고 남포 불에 둘러 앉아 이도 잡았지
앵두와 살구와 자두와 다래와 머루와 오디와 버찌와 산딸기와 찔레새순
가재와 개구리와 미꾸라지가 우리들 간식이었어
박박 밀어올린 대가리마다 허연 기계충 자국
단발머리마다 하얗게 들러붙은 서캐 떼거리들이랑
왜 꼭 손 시려 터질 때쯤 구슬치기를 했는지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민족 싸우고 싸워서.....> 고무줄 노래도 신났고
그걸 면도칼로 자르고 튀는 건 더 신났지
치마 들춰봐야 꿰맨 빤쓰 뻔한데 아마 비명이 즐거웠었나봐
<우리는 대한민국의 아들딸.....백두산 영봉에 태극기 휘날리자>줄줄 외웠고
서울엔 전차가 다녔는데 육학년이나 되어야 생전 처음 촌놈 서울에 가는거야
아마 서울 수학여행은 기차 짐칸에 타고 갔는데 무슨 <만국박람회>인가 길 놓칠
까봐 선생님 뒤통수만 보느라 뭘 보았는지도 몰라
이런 걸 끄윽! 이 아부지가 말이야 소설로 쓴다면 말이야 끄윽!
니 애비는 말이야! 아니.... 다 모두 다 말이야! 우리는...우리는 다....모두 다
이렇게 살았어! 이렇게. 응? 이년아 알겠냐? 끄윽!
..........................
으 아 악!
아니 이런 고약한 년 이럴 수가?
앉은 채로 잠을 자다니!
허 허 허 허 허
나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