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모 조원선
아내가 빤쯔 다섯장을 사줘서 일단 세탁했다. 빤쯔를 개면서 옛생각이 난다.
나는 시골 국민학교를 졸업하면서 인생의 쓴 맛을 두번이나 봤다. 전국의 수재들이 모인다는 서울의 일류 중학에 연속 두해를 낙방하고 시골 중학에 입학. 이미 친구들은 2학년인데. 하여튼 곡절끝에 서울의 ㅇ고등학교에 겨우 진학하여 혼자 유학생활을 했다. 여기서 빤쯔얘기의 시작.
떠돌이생활이었다. 외아들로 곱디곱게자란 내가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았으니. 가지 호박 고추 이런 거 안 먹는 놈이고 꼴에 아무도 안 알아주는 시골만의 우등생. 제일 문제가 속옷의 세탁. 친척 어른들이 빨래내놓으라고 하면 참 난처했다. 내가 빨아도 내놓고 널기 쑥스럽고. 궁리끝에 결국 해결책은 견딜 수 있는 최대한도로 버텨 오래도록 입는다. 그리고는 똘똘 꽁쳐서 버린다. 이른 바 일회용 빤쯔. 동대문시장에서 값이 좀 싼 빤쯔를 대량으로 구매하는 큰 손이 나였다. 고2때 쯤 사설기숙사생활을 할 때도 내 빨랫대에는 빤쯔가 없었다. 고3 무렵 서울근교로 집이 이사올 때까지의 내 짓거리였다. 오십년 전의 얘기.
그때의 내 빤쯔는 불쌍했다.
허허허.
(20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