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20년)

구멍론

犬毛 - 개털 2020. 1. 22. 13:40

 

구멍론

견모 조원선

 

죽은 부엉이를 묻기위해 1번구멍을 파낸 흙이 빗물따라 바다로 흘러갔다 어떻게 하지?

2번구멍을 새로 파면서 나온 흙으로 메우면 된다

2번구멍은 3번구멍을 파면서 나온 흙으로 메우고

3번구멍은 4번구멍을 파면서 나온 흙으로 메우고

4번구멍은 5번구멍을 파면서 나온 흙으로 메우고

그래서

6번구멍을 파고 또 7번구멍을 파고 또 8번구멍을 파고 또 9번구멍을 파고

파고 파고 파고 파고 파고 또 파고

그리하여

구멍만 파다가 끝나는 게 이 세상이고

온통 구멍 메운 상처로 가득한 게 이 세상이지

결국 구멍 하나는 영원히 남는 것이고

애초에 2번구멍을 빈 채로 그냥 놔두지 그랬냐고?

쓸데없는 짓거리를 왜 하냐고?

그게 아니지!

늘 남겨지는 새 구멍하나가 영원한 우리들의 일터이면서 보금자리라니까!

그래서

구멍은 영원한 것이여!

구멍 만세!

구멍 만만세!

(2001)

'詩 (2020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0) 2020.01.23
제주에 사니까  (0) 2020.01.22
색깔론  (0) 2020.01.22
주례사 단 한마디 ㅡ 동백의 꽃말로 살아라  (0) 2020.01.21
슬픈 산책  (0) 2020.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