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여행기 - 이르쿠추크와 바이칼호(080801-05)
犬毛 趙源善
* 언제나 그렇듯이 비행기는 이륙하면서부터의 오 분간이 몹시 두렵다. 몹시 흔들림을 느낄 때는 참 불안하다. 모두들 신문을 펴들고 태연한 척하지만 아마도 다 내 맘 같으리라.
4시간 정도 비행하여 이르쿠추크에 도착하다. 01시. 시차는 없다.
트랩으로 내려 버스를 탄다. 약간 서늘하다. 현재 우리의 여름기후와 대략 비슷하다.
공항건물이 작고 후줄근하다. 새삼 인천공항 시설이 좋다는 것을 느낀다.
입국 수속이 길다. 컴퓨터 등 제반 시설이 낙후하여 길게 줄을 서서 오래 기다린다. 2시간 정도.
많은 여행경험으로 기다림에 능숙한 나는 별로 지루하지 않다.
현지 가이드는 한국유학생이다. 스물대여섯 정도의 광주 조선대 출신 여학생으로 여기서 대학원 공부 중이란다.
한국에서 수입된 현대자동차 관광버스(중고)가 반갑다. 이십분 이동하여 앙가라강변의 호텔에 도착한다. 04시경. 갑자기 독일 관광객 200명이 먼저 밀려들어 방 배치에 문제가 있다한다. 인원이 적은 한국인관광객이 양보해 달라하여 저층 스탠드 룸을 배정 받았는데 우리나라의의 하급 여인숙 정도. 침대는 두개. 화장실이랑 욕실이 형편없다. 욕조도 없고 무척 좁다. 그러려니 했지만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겨우 세수와 양치만 하고 잠시 누워 졸다.
* 호텔의 아침식사는 뷔페식. 우유 빵 햄 샐러드 야쿠르트 등등 대략 간단히 먹었는데 그런대로 괜찮다. 짐을 정리하여 방에 그대로 두고 떠나면 저녁에 새 방으로 옮겨준다고. 하룻밤 스탠드 룸에서 묵은 비용을 2인당 150달러씩 환불 받았다. 그것 참. 여행 다니다가 별 경우가 다 있다. 허 허 허.
이루크추크시는 바이칼호수 서쪽으로 65킬로미터 떨어져 앙가라 강변에 위치한다. 약 70만이 사는 도시로 유학생을 합쳐 대략 80만 정도가 유동한다. 350여년의 역사도시. 지정학적위치로 중국과 몽골로 통하는 무역도시. 모스크바에서 5000킬로미터. 시베리아의 파리 또는 시베리아의 꽃으로 불리는 중심 도시.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중간 도시.
바이칼호의 영향으로 비교적 바람이 적고 기온이 온순한 편. 한겨울에는 영하 30도까지 내려간다. 요즘에는 백야현상으로 05시에 동이 터서 밤 11시에 어두워진다.
이도시가 문화수준이 높은 까닭은 제까브리스트들 덕분이라고. 프랑스와 러시아의 전쟁에 참전한 젊은 장교들이 나폴레옹을 추격하여 프랑스까지 진격했다가 제정 러시아 황실의 부패에 대항하여 군사혁명을 일으키는데 이들 백 수십 명의 장교들을 지칭한다. 12월 혁명이라 하여 제까브리스트라 한다.
하루 만에 제압되어 일부는 사형 당하고 나머지들이 유형 당했던 곳이 바로 이곳. 이들의 부인들이 함께 유형을 택하여 비교적 활동이 보장된 생활을 하며 러시아 귀족문화와 유럽수준의 문화를 누린 것이 오늘 날 남아있는 대부분의 역사유산이다.
수량이 풍부하고 전기도 넉넉하지만 부동산 값이 비싸다. 오늘날 이혼율이 거의 100%에 가깝다고. 거리는 주로 벽돌건물. 골목 안에는 거의 고풍의 목조건물들.
여러 번 한국산 중고차량을 만난다.
전차, 버스형 전차. 버스, 택시, 승합형 버스 등이 교통수단.
건물의 에어컨이 엘지 상표다. 오래된 금성 상표도 보인다.
시가를 벗어나자마자 계속 앙가라강을 멀리 또는 가까이 오른 쪽으로 끼고 달린다. 좌우로 자작나무 숲이 끝이 없이 내내 울창하다. 숲이 참으로 부럽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숲이 있어야 하는데. 없으면 이제부터라도 심어야 하는데. 우리는 미친 듯이 다 까 뭉겨서 아파트만 짓고 있으니.
아 아 참으로 후손들의 살 곳이 막막하여 걱정이다.
* 1시간 정도 후에 리스트비양카 도착.
배를 타고 바이칼 항구로 이동한다. 앙가라강의 시작지점을 배로 10여분 가로질러 건너편 선착장이 환 바이칼관광열차의 시발역이다.
바이칼호수는 세렝가강 포함 336개의 강과 개울 등을 유입하여 단 하나 앙가라강만을 유출.
크기 세계6위 31500평방킬로미터.
깊이 세계1위 1637미터.
길이 636킬로미터. 넓은 폭 80킬로미터. 좁은 폭 27킬로미터. 초승달 모양.
사화산 흔적. 지진 자주 일어남. 해마다 2센티미터씩 해안이 확장되고 있음.
2500만 년 쯤 전에 생긴 두 단층 사이의 골짜기에 물이 괸 단층호.
호수주변 몇 개의 산은 호수표면으로부터 2000미터 높이.
호수바닥의 퇴적층은 두께가 6000미터.
일흔섬(448입방 킬로미터)을 포함 27개의 섬.
담수량 23000입방 킬로미터. 러시아전체 담수량의 4/5. 지구전체 담수량의 1/5.(단, 극지방과 빙하를 제외함). 파고는 4-5미터 이상의 경우도 있음.
수심 40미터까지 들여다보이는 투명도(일반 다른 호수의 10배). 염도도 낮음.
해양성기후(주위보다 겨울에는 따듯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65키로 거리 이루크추크와 8도에서10도의 기온 차.
중심부 수면온도 0도(겨울). 15도(여름). 가장자리는 여름에도 18도 안팎.
서식 동물 1550종. 식물 1085종. 조류 326종. 199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
52종의 서식 물고기중 27종이 바이칼에서만 산다. 동식물 중 2/3 정도가 바이칼 고유종.
연어류가 많이 잡힘. 가장 큰 철갑상어는 1.2미터에 120킬로그램. 특산어종 오물.
바이칼에는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담수호에 물개가 산다. 6만- 10만여 마리.
5월 - 10월은 뗏목으로 건널 수 있음.
11월 중순부터 얼어 12월말에 전체가 얼어붙는다. 1,2월 평균기온은 영하 19도.
1월 말경 얼음 두께 80-120센티미터에 이르면 호수위로 교통 표지판이 세워지고 10톤 정도의 화물 트럭이 통과한다.
광업(운모, 대리석). 셀룰로오스와 종이. 광천업. 조선업. 어업. 임업. 수산업. 관광업 등등.
호수위에는 구름이 없고 호수 주변지역은 하얀 짙은 구름이 낀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 사이의 9466킬로미터를 연결하는 세계에서 제일 긴 철도구간. 모스크바에서 이르쿠추크까지는 5191킬로미터.
* 바이칼 순환 관광열차를 탄다. 오늘의 관광객만을 위해 3량을 달았다. 기차 안이 참 깨끗하다.
호수전체를 기차로 도는데 약 5일 정도 걸린다고. 오늘 우리가 지나가는 구간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시속 20킬로미터의 속도로 약 5시간을 간 후 슬루쟌카에서 순환선을 벗어나 대륙횡단열차 구간으로 접어들어 이르쿠추크로 다시 귀환하는 여정이다.
잔잔하다. 긴 쪽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저 멀리 맞은 편 펄프 공장굴뚝 하얀 연기의 위치가 가도 가도 그 자리에 그냥 있다. 왼편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바이칼의 모습은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가끔씩 아래 호숫가에 야영객들이 보이지만 수영하는 사람은 없다. 물이 차가운 모양.
먼저 손을 흔들면 흔들어 줄 뿐. 적극적이 아니며 활발하지도 않아 보인다.
웅장한 바이칼 광대한 바이칼
그 바이칼은 손짓도 없이 파도도 없이 아무 말 없이 그저 파랗기만 하다.
기관사가 풍광 좋은 적당한 곳에 아무데나 세워준다. 20분 후에 출발한다고 하면 근처를 구경하거나 사진 찍다가 돌아오면 된다. 기적 울리면 출발 신호란다.
우리나라에서도 요즈음 흔히 볼 수 있는 야생화들이 철길 옆에 그득하다. 내가 아는 패랭이와 망초가 눈에 띈다. 전혀 손질하지 않은 자연스런 모습이다.
관광객들은 물가로 내려가기도 하고 야생화 꽃밭에 들어가기도 하며 마냥 즐겁다. 농가도 보인다. 아래쪽 호숫가에 한 두 팀 야영가족들을 보면 참으로 단순해 보인다. 때로 젊은 친구들은 거의 남녀 구분하지 않고 대부분 담배를 피워 물고 있다. 함께 여행하는 러시아 관광객들은 러시아어의 발음이 원래 거칠어 무슨 시비를 거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표정이나 행동을 보아 비교적 온순해 보인다.
다시 출발한다. 도시락을 먹으며 가이드가 건네준 보드카를 마신다. 40%의 강렬함이 목구멍을 내리 훑는다. 짜릿하다. 추위와 싸우며 사는 사람들의 술이라서 독하리라. 이들은 늘 이것을 즐긴다고. 보통 휴대용 소주 몇 병을 가져와 마시는 게 보통인데 여행지의 특산 술을 기차 안에서 마셔 봄이 특이하다.
작은 굴이 많다. 느릿느릿 절경을 뒤로 밀며 기차는 숨바꼭질하면서 굴을 드나든다. 좌측으로는 계속 바이칼을 옆구리에 끼고 우측으로는 어깨 위로 100미터이상의 깎아지른 바위절벽이 종종 나타난다. 아찔한 광경이다.
구철도의 옛 굴, 옛 증기기관차, 녹슨 옛 철로, 농가에서 파는 오믈(바이칼 특산 생선) 등등 슬류잔카까지 4 - 5번을 쉬며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을 구경했다. 이 모든 것이 샘나는 정도가 아니다. 바이칼을 통째로 들어 우리나라로 가지고 가고 싶다.
커다란 야영지를 지난다. 손을 흔들기도 하지만 주먹질을 하기도 한다. 자가용이 그리 많지 않다. 낡은 차들이 보인다.
슬류잔카에 도착하기 전부터 슬슬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슬류잔카역에서 잠시 쉰다. 아름드리 원목을 가득가득 실은 화물칸이 길게 꼬리를 물고 서있다. 엄청난 양이다. 나무가 많다보니 시골의 모든 집들이 거의 목조 건물이다.
슬류잔카부터는 내륙을 통해 다시 이르쿠추크로 접근한다. 이제 달리는 이 길이 바로 대륙횡단열차 구간이다. 두 시간 정도를 달리는 동안 어제의 피로로 가물가물 졸다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시골 풍경이 애처롭다.
고만고만한 목조 건물이 지저분하고 좁아 보인다. 지붕이 가파르고 삼각형인 이유는 눈 때문이란다. 겉보기에는 꼭 비가 줄줄 샐 듯이 낡아 보인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어디든지 산에는 나무가 울창하다. 숲이 부럽고 나무가 부럽다.
이루크추크로 다가오면서 다소 근사한 집들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부자들의 별장들이라고 한다.
제법 비가 뿌린다. 이르쿠추크역이 역사적 건물이란다. 대륙횡단의 요지로서 중간 지점이라 한다.
보기에 그리 대단한 규모로 보이지는 않는다. 버스로 옮겨 타고 숙소로 향한다. 앙가라강을 건너자마자 바로 가까이에 숙소가 있다. 약속대로 짐을 9층 새 방으로 옮겨 놓았다.
아 하! 그래 이 정도는 돼야지. 세계의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이만큼 크고 깨끗하고 전망 좋은 방이 흔하지 않다. 앞쪽으로 멋진 산책로와 앙가라강이 내려다보인다. 건너편으로 우측에 이르쿠츠쿠역이 보인다.
* 저녁식사를 하고 살짝 강변으로 산책을 나간다.
좌측으로 500여 미터 위쪽에 작은 섬에 젊은이들이 드나드는 나이트클럽이 있어서 밤에는 조심해야한다고 가이드가 주의를 준다. 하긴 가끔 지나가는 쌍쌍의 젊은이들은 모두 보드카 술병을 들고 다닌다. 낚시꾼도 보이고 강변을 걷는 러시아인들은 개도 끌고 지나간다. 우리나라나 별반 차이가 없다.
몹시 피곤하여 9시쯤에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다.
* 안개가 짙다. 일찍 일어나 컵라면을 하나 먹는다. 느끼하던 속이 확 풀어지는 이 기분이라니.
다행히 복도 가운데 냉온수기가 있어서 참 좋다.
식당에서 한 무리의 보디빌더들을 만난다. 발달시킨 근육의 정도가 엄청나다. 여자도 있는데 어깨가 딱 벌어지고 가슴의 균형이랑 참 아름답다. 물론 남자와는 비교의 대상이 안 되지만. 이 근처 어디에서 보디빌더들의 대회가 있는 모양이다.
실은 나도 예전에는 저걸 좀 했었는데. 지금은 쭈글쭈글 시들었지 하고 말했더니 아내가 아직 딴딴해요 볼만하고 이렇게 받아준다. 허 허 허 .
아침 강변을 산책한다. 강변의 가로수 길이 상쾌하다. 약간 쌀쌀하다고나 할까 아침저녁으로는 가을 날씨 같다. 오래된 시멘트벽에 낙서가 고풍스럽다. 손질하지 않음이 더 멋지다. 아내와 몇 장의 사진을 찍는다.
오늘은 이르쿠츠쿠 시내의 관광이다.
* 제까브리스트 박물관은 발꼰스키가 유배생활을 했던 2층 순수목조건물이다. 보기와 달리 안은 상당히 넓었고 방의 배치가 오밀조밀하다. 아내의 방 딸의 방 식당 방 정원 방 등이 고상한 옛 가구와 함께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큰 가방은 맡기고 가야하며 할머니들이 안내하며 설명을 하면 가이드가 다시 설명해 준다. 실내에서 사진을 찍으면 5000원 정도의 카메라피를 지불하여야한다.
발꼰스키와 그 가족들이 사용하던 여러 가지 가구들과 가족사진 그리고 유품들이 고스란히 잘 정리되어 있다.
문득 김옥균과 그 개화파들의 갑오개혁이 떠올랐다. 역사란 것이 다 그런 것이겠지만.
1825년 12월 젊은 귀족 청년장교들이 부패한 러시아 황실에 대해 혁명을 일으켰다. 이들은 나풀레옹의 뒤를 추격하여 파리에까지 진격했던 군인들이다. 우여곡절 실패하여 하루 만에 혁명은 진압되었으며 주모자 5명은 즉시 처형되고 120여명은 시베리아의 이르쿠추쿠로 유배된다. 발꼰스키는 그중의 하나이며 숙부가 톨스토이이고 숙부가 쓴 소설 전쟁과 평화의 실제 주인공이라 한다.
이들은 불우한 유형생활이라고는 하지만 수도권에서의 귀족신분을 포기하고 남편을 선택하여 함께 유형을 따라온 부인과 가족들과 어느 정도 귀족적 문화를 누렸으며 당시 러시아 최고의 엘리트 귀족당원들로서 이곳 주민들을 일깨워 지적인 바탕을 가꿔 새로운 유럽문화를 소개하여 드라마극장 오페라공연장 각종 건축물 등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남기게 된다.
* 예정에 없이 그 옆의 작은 러시아 정교회 회당을 들렀다.
회당 앞의 걸인이 마치 노숙자처럼 찌들었다. 어두운 분위기 속에 묘한 냄새가 난다.
축복을 받는 할머니들의 표정이 자못 엄숙하다.
* 즈나멘스키 수도원은 제까브리스트들과 그 가족들의 묘가 있는 곳으로 현재는 수도원이며 일요일에는 미사가 행해진다고. 찬란한 장식과 환한 조명아래 촛불들이 일렁인다. 촬영을 금한다.
건물 오른 쪽에 러시아의 콜럼버스라 불리는 제리포프의 흉상이 있다.
뒤로는 수녀원인 듯 하다. 왼쪽 앞으로는 수녀들이 가꾼 예쁜 꽃밭이 있다. 익히 우리도 알 수 있는 꽃, 봉숭아 다알리아 등 많은 꽃들이 아주 잘 가꾸어져 있다.
* 꼴착 제독의 동상
제정 러시아의 백군 사령관이었던 꼴착 제독이 몹시 화가 난 얼굴 무서운 표정으로 우뚝 서 있다. 어찌 수도원 앞에 군인의 동상이 있느냐 내가 사유를 물으니 세워진지 몇 년 안 된다고 하면서 상대세력과의 권력다툼 끝에 바로 이 수도원 앞쪽 강변에서 처형되었다고 한다.
* 도소매 시장
깔끔하게 정리된 가게들이 네 다섯줄로 도열해 있다. 갑자기 비가 내리는 바람에 겨우 과일가게에서 아내가 버찌만 좀 샀다. 아내는 가게에서 기다리고 나는 버스까지 뛰어가 우산을 가지고 왔다. 좀 짜증났지만 어쩌란 말이냐 허 허 허.
점심은 이 도시에서 유명하다는 러시아 전통음식점엘 갔는데 야채와 빵과 차가 제법 맛났다. 러시아 전통의상을 입은 아가씨들이 서빙을 했고 식당안의 분위기가 제법이었다.
키로프광장은 우리의 시청 앞이라 생각하면 된다. 다만 우리는 텅 빈 잔디밭인데 여기는 가운데 통로를 넓게 하고 양쪽으로 가로수와 화단을 잘 가꾸었으며 중앙에 분수대가 있다. 비가 줄줄 쏟아지는 가운데 아내는 보라색우비를 입고 난 우산을 받고 어깨를 꼭 안은 채로 함께 걸었다. 혹시나 하여 가져온 우비가 완전히 히트였다. 원래 예쁜(?) 아내지만 아마 좀은 돋보일 게다.
* 영원의 불꽃
광장과 앙가라 강변사이에 있는 성화 비슷한 곳. 영원히 꺼지지 않게 사시사철 불이 꺼지지 않는다고 한다. 신혼부부들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반드시 들려가는 코스라고.
한 무리 여학생들이 비를 맞으며 서 있다. 함께 사진을 찍자했더니 환성을 터트린다. 아우성 속에 기념 촬영. 나중에 들었지만 우리 일행 중 한 분에게 돈을 달라고 하더란다. 아마도 불량소녀들이었나 보다.
갓 결혼한 신혼 부부 한 쌍을 만난다. 비가 오는 데도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영원의 불꽃 앞에 선다. 행복을 빌어주며 손을 흔들었더니 신부가 활짝 웃는다. 아 아 그런데 요즈음 러시아의 이혼율이 거의 100%에 가깝단다. 이 어찌된 모순인가?
* 육교를 넘어 앙가라 강변에 들어선다. 바람 속에 빗발이 제법 거세다.
알렉산더3세의 기념비가 우뚝하다. 시베리아 철도 건설을 명령하고 시행한 바로 그 황제란다. 동상아래 독수리모양의 조각이 알렉산더의 철도건설명령서를 발로 움켜쥐고 있어 힘차다.
저녁식사는 고려인이 주인이라는 한식이었는데 김치나 돼지고기무침이나 그리 썩 맛나지는 않다.
* 중앙시장에 가다. 우리나라의 재래시장 중에 좀 깨끗하게 새 단장한 곳 정도의 수준. 호객을 하거나 그리 시끄럽지 않다. 이상하게도 시장안의 모든 사람들(상인과 손님 모두)의 표정이 밝게 살아 있는 것 같지가 않다.
건너편의 백화점에도 들리다. 화장실이 급해 화장실을 찾느라 애 먹었다. 러시아 청년인 듯하여 영어로 물었으나 전혀 먹통. 손짓 발짓 끝에 찾는다. 이곳의 화장실은 일급 호텔이나 음식점을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변기에 뚜껑과 깔고 앉는 덮개가 없다. 난처한 일이다. 위로 올라 선 발자국이 보인다. 하지만 익숙하지 못해 그리 할 수는 없고. 엄청난 양의 휴지로 열심히 변기통 위를 닦는 수밖에. 그것 참.
백화점 물건은 약간 우리 유행에 뒤져 보이는데 값은 비싼 편이었다.
비는 여전히 질금질금 내린다.
* 호텔에 돌아와 목욕 후 9시에 6가족이 모였다. 제각기 먹거리를 가지고 모이니 각양각색 많은 양이다. 밖에 비가 그친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술잔을 돌리고 또 돌리고 10시가 되어도 밖은 아직 훤하고. 러시아 이르쿠추크에서 앙가라강을 내려다보며 주고받는 즐거운 환담은 끝이 없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소주들이 자꾸만 기어(?) 나오는지. 나도 휴대용 5병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12시를 훨씬 넘어서 갑자기 멀리 오페라 하우스부근 강변에서 폭죽이 터진다. 오색 불꽃이 찬란하다. 젊은이들의 축제인가 보다. 모두 탄성을 올리며 창가로 모인다. 폭죽축제의 끝은 언제나 허망하다. 여행의 끝도 그렇지만.
잠시 후 이번에는 우리 호텔 앞에서 폭죽이 또 튀어 오른다. 아마도 우리 투숙객을 위한 것이 아닐까. 아무튼 호텔에서의 마지막 밤을 실컷 즐긴다.
* 가방을 꾸려 버스에 싣고 출발한다. 이르쿠츠쿠의 번화가를 지난다. 앞쪽 도로변으로는 석조 고풍의 건물들이고 바로 뒤 골목으로는 금방 목조 건물들이 보인다. 오래된 극장건물 앞에 요절했다는 유명한 젊은 드라마작가의 동상이 보인다. 새로 지은 영화관도 보인다. 가가린로가 있다한다. 우주인 유리 가가린이 이곳에서 비행훈련 중에 사고로 사망하였다 한다. 거리는 왕래하는 사람이 적어 한산하다.
* 한 시간 정도 첫날과 같은 코스(바이칼 호수로 가는 외길)로 이동하다가 딸찌 건축박물관에 들리다. 울창한 깊은 수풀 속에17세기부터 시베리아에 정착한 러시아인들의 요새와 가옥과 학교 교회 등 목조건물이 수몰지역으로부터 그대로 옮겨져 있다. 건축물 40종과 문화재 전시품 8000종이 전시되어 있다.
요새의 웅장한 대문이 보인다. 목재로만 지은 대단한 성곽의 출입구다. 작은 예배당 건물이 너무 너무 예쁘고 깜찍하다. 학교건물과 칸 칸 작은 교실들이 앙증맞다. 우리와는 좀 다른 모양의 그네에 올라 아내와 마주서서 함께 잠시 흔들어본다. 일반 집안에 들어가 보니 창고에 여러 형태의 썰매와 쟁기가 보인다. 옷감을 짜는 틀도 보인다. 부엌도 아담하다. 그들 고유의 기타 비슷한 악기가 걸려있다.
원주민으로 보이는 기념품 가판대에서 물개모양의 오카리나를 한 쌍 사다. 대략 좀 비싼 편이다.
흑마 한 마리가 우뚝 서서 사진 촬영비를 받는다.
모든 것이 다 나무다. 조명용 전깃줄이 겉으로 이리저리 드러나 있는 것이 흠이다.
어쩌면 서부 영화에 나오는 풀밭 목장 같은 아늑한 느낌도 든다.
엊그제 왔던 곳 - 바이칼호에서 앙가라강이 시작되는 지점을 배로 건너던 그 선착장 -을 지나친다. 오른쪽으로 호수를 끼고 잠시 달린다.
* 호숫가 멋진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는다. 배식이 아주 느리다. 한 테이블에 조차 같은 음식을 띄엄띄엄 내준다. 서비스가 형편없다. 옆자리의 독일인들 에게는 잘 해주면서. 비교된다. 주문도 잘못되어 생선(오믈)까스가 아닌 닭고기까스가 나왔다. 참아라. 그저 눌러 참는 게 약이다.
바깥의 야외식탁은 바로 발아래 바이칼 호수의 물이 찰랑거린다.
몇 장의 사진을 찍다. 아시다시피 나는 별로 사진 찍히는 걸 즐기지 않아 주로 아내를 찍거나 풍경만을 많이 찍는다.
* 바이칼호 유람선 선착장에 도착하다. 100명 정도 승선한다. 실내에서 오믈(특산 생선) 안주로 보드카를 마시기 시작한다. 여자들은 하나 둘 자리를 피하고 남자들 끼리 모여 마신다. 은근히 취한다. 결국에는 바깥 갑판으로 이동하여 다시 자리를 잡고 또 새 병의 마개를 딴다. 바람이 시원하다. 보드카가 숨결에 실려 다 깨어 날아간다. 주거니 받거니 또 한 병이 자빠진다.
절경에 젖어 술에 젖어. 가도 가도 가도 가도. 물결 물결 물결 물결. 마시고 마시고 또 마시고.
아 아 나는 이리하여 바이칼을 유람하는 배에 오르자마자 두 시간을 내내 오로지 보드카에 미쳐 정신을 놓아 버렸다. 이름 하여 유람이 아닌 주람(?)이다 주람! 허 허 허.
몇 장의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지만 바라보는 아내 눈초리가 곱지는 않다.
* 풍물 시장에 서다. 주로 기념품판매와 오믈(생선) 시식장이다. 내 생각에는 엄청나게 예쁜(?) 아가씨가 주인인 곳에서 잠시 머물러 아내와 함께 서 달라하여 사진 한 장!
* 가까운 곳에 바이칼 생태 박물관에 들어가다.
바이칼의 기원 구조 특징 등을 한 눈에 보는 도표와 서식하는 각종 동식물의 표본과 박제와 광물 견본 그리고 실물들을 볼 수 있다. 바이칼 물개를 보다. 중간층 휴게실에서 러시아 아기들을 보았는데 역시 아기들은 천진난만 정말 예쁘다.
* 십 여분 이동하다가 호숫가 한적한 시골 동네로 들어간다. 호숫가 숲 속에서 촬영을 위한 모델을 자청하여 아내와 진한 키스 신을 연출하다. 모두들 한바탕 웃다. 84세의 조각예술가의 집을 방문한다. 대문 앞에 목조 조각품들이 다 역사적 인물들이다. 집도 지붕아래 문양도 다 당신의 작품이라고. 우리가 방문한다는 소식에 거실로 나왔지만 건강 상태가 나빠 거동이 몹시 불편하다고. 그의 아내만 보다. 앞마당과 작업실 그리고 잘 가꾸어진 텃밭을 구경하다.
* 돌아오는 길에 자임카에서 자작나무 사우나에 입욕하다. 통나무로 지은 사우나 속에 들어가서 달구어진 자갈위에 물을 부으면 김이 사우나 안으로 퍼져 나오고 이때 자작나무 묶은 빗자루 같은 것으로 온 몸을 두드린다. 더우면 밖으로 나와 앙가라 강물에 텀벙 뛰어든다. 그러기를 서너 번 왕복하고 차를 한잔 마시니 상쾌한 이 기분.
저쪽에서 아내가 벌거벗은 나를 사진 찍나보다. 허 허 허.
* 사우나 바로 옆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러시아 꼬치구이 샤실릭을 먹는다.
우리가 사우나 하는 동안 먼저 온 다른 팀 한국인 관광객이 한바탕 소란을 피웠단다. 역시 서비스 문제. 예약한 한국관광객의 자리에 외국인을 먼저 앉히고 그들에게 음식을 주고는 한국관광객은 다른 자리에 좁게 앉히고 불친절하게 식은 꼬치구이를 가져다주며 샐러드도 빼 먹었다나 뭐 이러면서 와장창 한 판 벌렸단다. 물론 주인이 사과했다지만.
다니다 보면 이런 일이 많다. 조용히 불러서 앞뒤가 이런 게 아니냐하고 조곤조곤 따져 옳고 그름을 일러줘야지 많은 사람들 특히 외국인들 앞에서, 외국의 관광지에서 이러면 쓰겠는가?
찝찝하다.
오는 길에 잠깐 슈퍼마켓에 멈춘다. 선물 살 기회를 주는 모양이다. 다른 것 말고 보드카나 한 병씩 사시라 가이드가 권한다. 이부장 이하 우리 방 술꾼들을 생각하여 나도 그럴듯한 실버 상표로 한 병 구입하다.
* 11시 30분경에 공항에 도착하다. 겨우 며칠 함께 생활한 딸보다도 나이어린 가이드와 헤어지는데 웬 눈물이 글썽하는지 모른다. 모든 손님을 품에 한번씩 안아주는 가이드가 아주 대견하다.
입국과는 달리 출국 수속은 아주 빠르다.
아 하! 공항 탑승대기실 구석에 아주 작은 구멍가게 같은 면세점이 하나 있는 데 그만 아까 들렀던 슈퍼마켓보다 달러 당 2루블을 더 쳐주면서 술값도 훨씬 싸다고. 아마도 이 여행 프로그램이 신 상품이라 현지가이드도 면세점이 있는지를 모르는 모양이다.
2시 30분까지 두 시간 이상을 의자에 앉거나 또는 길게 누워 기다린다. 썰렁하다. 이곳 이르쿠추크 공항의 화장실마저도 뚜껑이 없기는 매 한가지다.
생긋 웃으며 맞아주는 대한항공의 스튜어디스가 반갑다.
오랜만에 신문을 뒤적거려본다. 큰 사건은 없었나보다. 다행이다. 무사히 이륙한다. 또 다행이다.
이제 3시간 40분 후에는 내 나라 내 조국 대한민국에 도착하리라.
<08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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