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犬毛 趙源善
파출소 옆 파고다 공원公園 앞에서 그녀를 만난다
활짝 웃는 날 우아한 오후 세시다
우리는 카키색으로 중무장한 바바리 한 쌍이다
삼일빌딩 아래 청계고가高架 밑을 건넌다
튀김골목이층을 오르는 목조계단은 무척 가파르고 삐꺽삐꺽 소리가 난다
접시 위 바삭거리는 새우 몇 마리가 막걸리 대접 속에서 펄쩍 살아 춤춘다
명동明洞 성당은 언제나 노동자 농민의 구리한 냄새가 고상高尙하게 풍긴다
삼일로 창고극장 옆 가파른 언덕 오를 때면 쌩쌩 부는 맞바람이 우리를 꼭 들러 붙여준다
퇴계로 오토바이 가게는 늘 쪽바리 제품들이 부릉부릉 거려 비위 상한다
대일차관경제외교정책이 왜 벽돌을 던지게 했는가에 관해 잠시 심각한 침방울이 튄다
이 지역은 뒷문이 여기 있는 관계로 동국대학교의 나와바리가 분명하다.
망설망설 홍탁집에 쑥 고개 디밀었다가 그만 코를 쥐고 깔깔대며 이내 튀어 나온다
단골 털보집 꼬부랑 골목에 의쌰 의쌰 소리만 나면 최루탄催淚彈가스가 사정없이 작렬한다
어느 고연전高延戰날 을지로를 껑충껑충 어깨동무 행진하다 그만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린다
계림극장 그림간판 속 여배우는 항상 입술이 새빨갛고 하얀 윗니 두개가 살짝 드러나 있다
서울 운동장 야구장은 몽둥이로 봉황을 몰아 날리는 함성소리로 가득하다
아저씨 돋보기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청계천 헌책방엔 값비싼 지식이 나란히 발가벗고 눕는다
슬슬 등장한 백열등아래 콧잔등이 발그스레하고 발바닥은 제법 후끈후끈 감각이 얼어온다
빈대떡 훌러덩 능숙하게 뒤집는 광장시장 아줌마 입술은 두툼하고 기름이 잘잘 흐른다
두개의 숟가락으로 자꾸 퍼 먹으니 그 많던 팥죽그릇의 바닥이 금세 보인다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임을 그녀가 눈으로 슬쩍 말한다
방뇨放尿 향기 물씬한 시장 피륙가게 문짝 뒤에 숨어 번개처럼 술 냄새나는 키스를 나눈다
동대문 경찰서 옥상 철탑위에 빨간 신호등이 번쩍번쩍 돌아간다
157번 버스 안에 패대기쳐진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이제부터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서울하늘은 날마다 매우 더러워져서 별이 살지 않는다
야금야금 낭만이 죽어간다.
<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