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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犬毛 - 개털 2006. 10. 1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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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犬毛/趙源善



공포의 시간은 언제나 똑같이 마치 괴테처럼 엄숙히 나를 고문 한다

어젯밤 근근이 달아올랐던 낡은 육신도 길게 나자빠진 채 물컹물컹 무소식이다

부릉부릉 떨며 나직한 목소리로 이불속 내 영혼을 잡아당겨 억지로 자리끼를 먹이는

저놈은 내가 손수 길들여놓은 치밀한 욕망이란 놈이니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으며

단한치의 오차도 있을 수 없다

어둠을 더듬어 양말을 주워섬기는 등 뒤로 간간이 아내 코고는 소리가 슬쩍 아름답다.


컴컴한 추억은 뇌리에 나사못으로 들이박혀 영영 녹슬어 버렸다

입구만 생각나는 창 없는 벽 속 아주 작은 방 - 허리춤을 비틀려 질질 끌려간 음침한 상자,

착검한 M - 16 A1 의 위력, 어느 오후, 학교 정문 앞 공터, 눈물로 부른 교가 및 애국가,

정오를 기한 긴급조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을 위반한 가련한 똥파리의 하얀 날갯짓

오늘 이 새벽이 이렇게 소름끼치는 까마득하게 분명한 까닭이다.


14번 가로등 제 그림자는 언제나 꼿꼿해서 바람이 오히려 비실비실하다

제1의 여인을 지나치며 맡은 후춧가루 냄새는 삼류영화 비릿한 카섹스의 마지막장면 같다

세차원의 소형스쿠터는 머플러가 떨어졌나보다 자식! 이 새벽에 저리 방방거리면 쓰나?

너무 부지런해서 골이 터진 우유 한 팩이 비참히 널브러져 아스팔트의 목을 축인다

왼쪽 아파트의 희뿌연 벽이 아찔하다

제2의 사내는 찌그러졌다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이 뛰는 게 아니라 질질 발을 끌고 있어서 쉰 막걸리 진액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오른쪽 아파트의 희뿌연 벽이 또 아찔하다

38번 가로등은 어제부터 눈알이 희끄무레 맛이 가서 사팔눈을 자꾸만 껌뻑껌뻑 거린다

제3의 여인이 제법 묵직한 파워 러닝으로 저 혼자 씩씩거리며 앞질러간다

아무데나 똥 질질 내깔기는 코 짓눌린 못생긴 시츄 개똥남이 뒤뚱거리며 따라간다

뒤쪽 아파트의 희뿌연 벽이 해일처럼 엄청나게 밀어 붙인다

제4의 마스크 맨이 저만치 보인다

이 사람은 키가 작아 모자 한가운데 갈고리 로고만 보이지만 절대 내가 길다는 건 아니다

4단지 앞에서부터 뒷걸음쳐 오다가 1단지 모퉁이에서 아마 앞으로 돌았으리라

위쪽 하늘 역시 희뿌연 벽으로 관 뚜껑처럼 어마어마하게 내리 닫혀버린다

제5의 군중은 제각기 다른 차림으로 초조하게 지갑을 흔들며 발을 달달 떨고 있다

24시 김밥 집에선 중국 쌀 냄새가 질펀하게 나는데도 이 시간에 돈줄이 꽤 길다

살을 찌우려는 자와 빼려는 자 돈 벌려는 자와 쓰려는 자의 웃기는 1000원짜리 전쟁이다.


도대체, 나는 어쩌자고 이 짓을 하는 가?

왜 늘 같은 새벽에 늘 같은 사람을 늘 같은 표정으로 만나 늘 같은 생각을 늘 혼자 구시렁거리는 가 말이다.


이리하여 육천 이백 오십 팔 걸음이 나를 창 없는 작은 방에 사정없이 밀어 넣으면

거기서 분당 90 M의 속도로 머리털을 쭈뼛쭈뼛 일으켜 세우며 숨을 참아야한다

이번엔 창 있는 그러나 거의 닫힌 채로 널브러진 더 큰 방으로 다섯 걸음에 들어가고

결국 창 없는 더 작은 방에 또 갇혀 나의 꼬부라진 성기를 물끄러미 들여다보아야 한다.


참으로 끔찍한 일요일이다

나는 엘리베이터가 정말 싫다.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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