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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게 웬일이지요?

犬毛 - 개털 2005. 6. 30. 15:46
이게 웬일이지요?

그 어떤 사람
딱 누구라고 밝히지는 못 합니다
으-응 뭐라던가?
아! 그게 프라이버시에 관계 되거든요.

바지춤을 덜 여미고도 남이 그걸 보고 웃으면 저도 같이 웃습니다
택시기사가 깨우다 지쳐 앞자리에 묶어놓고 다른 손님 받습니다
자기집 담을 넘다 허리깃이 걸려 오도가도 못하고 매달려 있습니다
뒷통수 터지고 예물반지 뺏기고도 안죽은 게 다행입니다
옆동 같은 층 남의 집 초인종을 가끔 누릅니다
집들이 끝나고 나오며 후배 처에게 얼마냐고 계산한다 합니다
시외버스 막차 타고 오다가 오줌마려 내려달라 합니다
어제 차를 어디에 세웠는지 몰라 그 일대의 골목을 다 뒤집니다
처남 장가간 날 손아래 사촌 처남들 옥상에 줄 세우고 번호매깁니다
단둘이서 어떤 중국집 진열장의 배갈병을 몽땅 비웁니다
셋이서 마차타고 마차 음식값만 수십만원을 냅니다
부부동반 공연구경 가서 여자들만 들여보내고 남자들은 딴 데로 샙니다
닷새쯤 그냥 지나면 건수를 만들려고 할딱 거립니다
적당히 기분 좋으면 밤새도록 글발(?)이 올라 미친 듯이 글을 씁니다
밤새 들락거리며 쑥물 꿀물을 마셔댑니다
제 배가 아프지 않는 한 아침밥은 반드시 먹어야합니다
그 정신에 어떻게 집은 찾아오는지 아주 신기 합니다
이십오년 삼백육십오일 살면서 원수 같은 뭐에 관해 엄청나게 할 얘기가 많지만.

그 어떤 사람?
그 사람 제 남편이에요
그 어떤 사람의 아내라고요 제가.

사십 다섯쯤부터 조금씩 바뀌어 지더군요
그 좋던 눈이 안 보인다고 돋보기를 찾더니만
애들 커서 대학 들어가면서 시외로 이사 해버린 후
제가 아예 그랬거든요 - 밤늦게 택시 타지 말고 그냥 사우나에서 자라고
난 더 이상 걱정하기 싫다고 거기서 그냥 출근하라고 전화나 해주고
단 한번 사우나에서 잤는데 - 친구들이 그래도 되냐고 밤새 전화하고 난리 났어요
슬금슬금 변하는 게 이제는 눈에 보여요
열두시 전후해서 조용조용 들어오지만 목 지키는 개한테 곧 들켜버리죠
이제는 일주일에 두 번을 안 넘기고, 연거푸도 절대 안 해요 -못 견디겠나 봐요
대리운전 몇 번 시키더니 돈이 아까운지 아니면 돈이 없는지
아침에 출근하기도 싫고 머리도 오래 아프다며 혼자 중얼중얼 하더니
요 칠 팔년 사이에
그게 철이 든 건지 늙은 건지
그 어떤 사람
그렇게 씩씩하고 튼튼하고 대단하던 그 사람.


그런데
이게 웬일이지요?

“어이! 나의 왕비님! 이거...... 읽어봐! 이게 내 마음이라고!”
비틀거리는 냄새와
꼬부라진 소리로 들이 내밀던 A4용지 한 장
사랑이 담뿍 담긴
그 어떤 사람의 시 한편이
살며시 그리워지니.
(05.01.犬毛.)

출처 : 이게 웬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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