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1년)

신발장

犬毛 - 개털 2011. 2. 3. 13:31

신발장

犬毛 趙源善



한 물 간 유행들이 오랫동안 빛 못 보고 컴컴한 감방 속에 처박혀있다

어디를 가든 나를 잘 보필하던 분(?)들에 대한 예우가 너무 소홀했다

새로 장만한 것 또는 맘에 드는 것으로 두어 켤레만 늘 신다보니 그렇다

한 때는 다 나의 사랑을 받았던 아주 멀쩡한 것들이라 아까워 버릴 수가 없다.


극장 무대에 올랐던 코 뾰족한 소가죽 반 부츠 - 배역처럼 모양이 좀 사기꾼 같은

키 높이 볼 좁고 반짝거리는 멋쟁이 베이지색 - 산뜻하지만 오래 걸으면 발이 아픈

품 넉넉하고 점잖은 밤색 세무 - 정말 편한데 무게가 군화처럼 묵직한

캐주얼한 등산화 겸용 다용도 - L A 여행길에 아내가 사준

가벼운 신소재 통굽 지퍼달린 일자 목 - 꽤 즐겨 신어 굽이 약간 닳은

이웃돕기 교회바자회에서 싸게 산 명품 - 모양이 참으로 신기하게 생긴

방배동 벼룩시장에서 고른 저렴한 가격의 양가죽 신품 - 한 치수 커서 잘 안 신는.


털고 닦고 빛을 내니 모두가 하나같이 싱싱하다

들락날락 구두를 갈아 신고 해묵은 아름다운 추억을 되짚으며

동네를 일곱 바퀴 돌았다.


인생의 신발장이 내 코앞에 우뚝 서있다.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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