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犬毛 趙源善
토요일.
아침에 아내가 떠났다.
아내 친구가 골절상을 당해 한 달 이나 미뤄졌던 이집트여행이다.
카메라와 충전기, 비상약과 마스크, 컵 라면과 사탕, 껌 등 몇 가지 챙겨주었다.
물론 금일봉도 주었다.
출근하면서 공항버스 정류장에 차를 세워 가방을 실어주고 슬쩍 한 번 안아주고 돌아섰다.
이런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니 뭐 대단치도 않다.
출국시간 임박하여 “잘 다녀와! 사랑해!”하고 문자를 보내준다. 나는 늘 이렇게 한다.
오전 동안 혼자 우두커니 나를 기다리던 개가 길길이 날뛰며 나를 반긴다.
깨끗이 정리된 집안이 깔끔하다. 이게 며칠이나 갈까만........
늦은 점심을 차려 먹는다.
이제부터가 문제다.
곰국을 데운다. 밥을 푼다. 김치를 꺼낸다. 밑반찬을 꺼낸다. 돼지고기를 볶는다.
국자와 주걱과 수저와.........하여튼 잘 먹는다.
뒤처리가 지겹다. 밑반찬들 뚜껑 닫아서 냉장고에 넣고, 국그릇 밥그릇 프라이팬 접시 등등
모두 다 설거지하고 식탁 닦고 개밥 주고 사과 반쪽 까먹고 약 먹고.........
아내 없이 딱 한 끼 차려먹고 이내 질려버린다.
그저 라면이 제일 편하지.
운동 삼아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간다. 개에게 두런두런 얘기를 한다.
네 엄마 별거 아니야 아빠가 최고지 너도 남자지만 아빠가 진짜 멋있는 사람이야 맞지?
도대체 이 개새끼는 내말을 듣는지 먹는지 그저 코 킁킁거리며 여기저기 영역표시 하느라
뒷다리 번쩍번쩍 들고 나오지도 않는 오줌을 찔끔거리느라 엄청 바쁘다.
개와 마주 앉아 아시안 게임을 시청하면서 양념통닭을 시켜먹는다.
내일 예배드리고 찬양대 연습이 끝나면..........월요일부터는........자유다.
아내가 집 비운 동안 모처럼 친구들이랑 술이라도 실컷 마시며 자유를 만끽하련다.
진탕 마시고 한 이틀 쉬고를 세 번만 반복하면 열흘이 후딱 지나갈 거야 허 허 허.
라면을 한 개 끓여 먹는다.
밤늦게까지 텔레비전과 씨름하다가 잠든다. 여보! 당신도 잘 주무시게나.
일요일.
밤새 개가 가슴에 파고들어 잠을 설쳤는지 일어나자마자 머리가 띵-하다.
마치 자동차를 몰고 1000미터 고개를 넘은 듯.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침을 몇 번
삼킨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교회엘 간다.
성가대 연습을 시작해도 여전히 귀가 울린다. 내 목소리가 내 오른 쪽 귀 속에서
스테레오로 들린다. 귀를 막으니 웅-하는 소리가 난다. 코를 막고 침을 삼켜본다.
그래도 뚫리지 않는다. 저녁 때 까지 여전하다.
월요일.
아침에도 영 머리가 개운치 못하다. 부지런히 곰국에 밥 말아 먹고 개밥주고
난방 끄고 가스 잠그고 전기코드 확인하고 대문 잠그고 출근한다.
하루 종일 십 여회 이상 귀가 막혔다 뚫렸다 반복한다. 기분이 이상하다. 저녁 술자리 약속을
취소하고 퇴근길에 집 근처의 이비인후과엘 간다.
문진과 진찰과 간단한 청력검사 후 돌발성 난청 징후가 보이니 대학병원엘 가보라고 권한다.
2일분의 약을 처방 받는다. 몇 년 사이 조금씩 오른 쪽 귀의 청력이 떨어지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약 먹으면 나으려니 쉽게 생각한다.
개란 놈은 남의 속도 모르고 반갑다고 칭얼거리며 달려든다.
화요일.
별로 밥 생각이 없지만 약을 먹어야하므로 귀찮은 짓(?)을 반복하고....... 출근한다.
곰국이 슬슬 지겹다.
인터넷에 돌발성 난청을 검색해 본다. 어라 이게 만만치 않은 병이다. 그것 참.
여전히 내 증세는 호전되지 않는다. 퇴근길에 다시 병원에 들러 몇 마디 물어보고
대학병원 진료의뢰서를 받는다.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기분전환 겸 개를 데리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산책을 한다.
이 여편네 남편 귀먹는 것도 모르고 이집트에서 띵까띵까 잘 놀고 있겠지?
집에 들어가 휴대폰을 꺼 버린다. 전화 받는 게 귀찮다.
포도주 한 잔을 마신다.
그나마 아시안 게임 중계방송이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수요일.
증세는 변함이 없다. 인터넷 검색으로 대학병원의 이비인후과 의료진을 살핀다.
전화하여 진료 가능한 의사를 지정하고 예약을 한다. 절차가 이리저리 복잡하다.
싱숭생숭하다. 내일 하루 병가를 신청한다.
목요일.
혹시나 검사에 지장이 있을까 하여 아예 아침을 굶고 병원엘 간다.
접수하고 카드 받고.........예약 덕분에 대기하지 않고 바로 의사를 만난다.
내 병력에 관해 대략 경과를 듣고 코 속으로 호스를 집어넣는다.
내시경 관찰을 끝내고 청력검사를 하란다. 순서를 기다리려면 40분가량 기다리라고하여
주차장으로 내려가 주스를 한 봉지 마시고 병원 구경을 한다. 환자들이 참 많다.
모두의 표정들이 어둡다. 하긴 어딘가가 아픈 사람 아니면 그 보호자들이니까.........
밀폐된 공간. 파장이 각기 다른 여러 종류의 기계음, 석자단어, 두자단어, 한자단어를
고음부터 저음까지 차례차례 양쪽 귀로 들려준다. 이어폰을 끼고 앉아 좀 처량 맞다
생각하며 시키는 대로 스위치를 누르고 대답하고를 반복한다.
결과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옆자리의 노인이 말을 건다.
사장님은 어디가 아파서 오셨소? 아, 귀가 좀 멍멍해서요.
난 귀가 쿡쿡 쑤셔서 왔더니 귓속에 돌이 들어있다 하고 아내도 어지럽다고 해서.........
술 담배 끊으라는데 그게 어디 되나..........그저 늙으니 여기저기.......사장님도 몸 관리
잘 하시오. 아, 네.
급작스레 청력이 떨어져 전혀 안 들리는 건 아니시고.........검사결과 우측 귀의 청력이
약합니다. 일단 일주간 약 드시고 안정하시며 추이를 보고 다시 검사를 하여 봅시다.
만약 계속 청력이 떨어진다면 입원치료가 필요합니다.
운동이나 음주는요? 적당히 피곤치 않을 정도로 운동하시고 수영은 피 하세요. 술은
안 드시는 게 좋은데........
다음 주에 다시 뵙지요. 혹 증세가 급변하면 연락주시고 빨리 오셔야 합니다.
아침 약 저녁 약 물약 가루약 정제가 한 보따리다. 빨간 줄그은 것부터 먼저 먹으란다.
2시에 늦은 점심을 차려 먹으며 신세 처량하다.
아침 약을 입에 털어 넣고 거실 소파에 누웠다. 졸리다. 약에 취하는 모양이다.
4시에 깨다.
국수를 삶아 김치 국물에 말아 먹는다.
개와 함께 산책을 나가 빵을 몇 개 산다.
텔레비전과 씨름한다. 저녁을 빵으로 때운다. 약을 먹는다.
호주서 아들놈이 불쑥 전화한다. 잘 있으니 걱정마라 하고 끊으니 장모님이 전화 하셨다.
어미가 어디 갔다며 혼자 어찌 사나? 걱정 마세요 잘 먹고 잘 지냅니다. 허 허 허.
잠자리에 들어 잠시 생각하고 결심한다.
에라 이........내일일랑 신나게 술이나 한 잔 퍼 먹고 보자.
일기도 쓸 필요 없다. 남은 곰국이나 반찬들은 다 쓸어 모아 버리고 설거지만 해 놓고
잘 먹었노라 말하면 된다.
금요일.
별일 아니라고........일주일 후에 다시 또 오란다고........동료들에게 얘기하고는 오늘저녁에
술이나 한잔하자고.........내 한잔 사겠노라 한다. 이판사판이다.
그리하여, 오늘 밤과 토요일, 일요일 밤만 어떻게 넘기면...........
미운 아내가 온다. 일기 접자.
<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