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플래닛에서 이동)

인도 여행기 1 -<070210>

犬毛 - 개털 2009. 1. 2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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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행기 1 -<070210>

犬毛 趙源善


여행이 다 그렇듯이 떠나기 전에 며칠 짐 꾸리는 가슴 설렘이 있다. 그러나 여행광인 내가 국내여행과는 달리 해외여행을 꺼려하는 것은 비행 공포증세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간에 아내가 덜컥 인도여행을 예약했다고 불시 통보(?)를 했으니 어쩌랴. 주섬주섬 짐을 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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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恐怖

犬毛 趙源善


아주 

시커먼

바로 그놈

우당탕 퉁탕 방망이질 치는 심장과 꼿꼿이 압정처럼 치솟는 머리카락

후들거리는 아랫도리

서늘하게 쭉 등줄기 훑어 내리는 진땀

무섭기로 치면

어렸을 적 문둥이나 상이군인 마주친 만큼.


세상사는 게 다 그래

한번 두려워지기 시작하면 좀처럼 헤어나기 어려워

밤낮없이 그놈에게 짓밟히고 눌리고 깔리게 마련이라

애초부터 그러려니 하고

씩씩하게 배 내미는 거야

발아래 개미를 봐

까짓 것

쨀 테면 째라지 뭐.


다 지나고 보면

내게 씹힌 그놈이 쓴 웃음이더군

허 허 허

눈 딱 감고

배짱으로 버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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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전

인터넷 여기저기에 인도 여행 자료를 뒤져 이것저것 읽어보다. 우리가 여행할 곳의 위치와 날씨 그리고 이동경로와 볼거리에 관해 간단히 알아보다. 음식과 특히 물을 조심하라는 내용이 눈에 띄다.


제1일 

<인천공항에서 - 델리 (2007.02.10.토)>

가방 들고 오후 2시30분 산뜻하게 집을 나오다. 맥(개)이 불쌍하다. 딸애가 잘 돌보리라 믿지만 10여일을 헤어져 있기는 처음. 국내여행 때는 10일간 제주도도 데리고 갔는데. 4시반 경 인천공항 도착. 짐 붙이고 면세점에 들러 딸애 심부름으로 화장품 몇 개 찾고. 7시 30분경 비행기에 오르다.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발밑이 허전한 듯한 묘한 공포감이 느껴지다. 꾹 눌러 참고 신문도 보고 아내와 얘기도 하고 뭘 먹어보기도 하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고도 10890m 시속 789Km 남은 비행시간 3시간 40분 잔여거리 2574Km 베트남 하노이 부근 상공 난기류로 잠시 요동치다. 맥주를 마시다. 델리공항상공에서 기후관계로 선회비행을 20여분 끝에 착륙하다. 에이 모른다. 이젠 별로 무섭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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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병伏兵

犬毛 趙源善


고도 10890m

비행시속 789Km

외부온도 -45도 F

남은 비행시간 3시간 40분

남은 비행거리 2574Km

도착예정시간 AM 12시 17분

현재 하노이부근 상공

난기류로 인하여 비행 상태가 고르지 못하오니

승객여러분께서는 자리를 이동하지 마시고 안전벨트를 착용하십시오.


눈을 꼭 감고

아내의 손을 꼭 잡으면

뒷골이 빠개지듯 번쩍하며 콕콕 통증이 흐르고

아무리 잠을 청해도 머릿속이 파랗게 맑아질 뿐

등판이 온통 축축해지며

발밑이 간질거린다.


누구도 몰라주는 이 괴상망측한 귀신은

내 몸이 구름을 발아래 두는 순간 꼬리를 물고 나타나

지독히 물고 늘어져 다 죽이지도 않고 반만 죽여 잔뜩 휘두르며 괴롭히다가

내가 다시 땅을 발로 밟자마자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고소공포高所恐怖

그것 참

허 허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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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렁한 건물구조의 공항청사. 입국 수속을 밟는 순간부터 묘한 냄새가 나는 듯 하다. 짐 찾아 나오니 이게 웬 일인가 비가 억수로 내린다. 현지 가이드와 만나 팀 미팅 후에 주차장에 나오니 혼잡하기 이를 데 없다. 겨우 전용버스에 올라 숨을 고르니 가이드가 뭔 꽃목걸이를 하나씩 걸어준다. 비는 주룩주룩 오는데 윈도우 브러시 없는 버스라니 나 원 참 차를 길옆에 세워 놓고 조수가 내려 앞 유리를 닦고 간다. 아무튼 숙소에 도착하여 허둥지둥 잠들다.


제2일 

<델리에서>

아침 일찍 눈을 뜨다. 호텔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 묘한 냄새. 소주 한 잔으로 목 추기고 무조건 아무거나 고추장 찍어 먹다. 예기치 못한 사고 발생. 어제의 비로 호텔 바깥 주차장에서 방향 돌리던 우리버스가 진흙 밭에 빠짐. 트레일러가 와서 끌어내는데 까지 40분 쯤 경과. 비는 여전히 오락가락. 아 하! 눈에 뜨이는 길가가 좀 너저분하다. 교통질서도 그렇고. 너절한 차림의 사람들이 사원입구에서 책자나 기념품을 내밀며 흥정을 요구한다.

구걸하는 어린애들의 모습이 참혹하다.

<자미 마스지드>

무굴황제 “샤 자한”이 공사를 시작해 십년 넘게 공사하여 죽은 후에야 완성했다는 이슬람 사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곳. 모두 신발을 벗고 맨발로 들어가다. 10,000명이 동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으며 최대 2만5천까지 수용한다고 하다. 입이 딱 벌어진다. 사원 광장에 엄청난 비둘기 떼가 날아다닌다. 카메라 촬영요금 을 받는다. 실외의 기도하는 광장이 비에 젖어 발이 시리다.

<바하이사원-연꽃사원>

이슬람교의 한 분파 종교의 사원. 연꽃모양의 거대한 건물형태가 우뚝 웅장하다. 누구든 신을 벗고 일단 사원 안에 들어서면 일체 침묵하며 자기가 원하는 신께 자유롭게 기도할 수 있다. 아내와 나도 함께 손잡고 앉아 기도하다. 사원 안을 돌아보다가 침묵의 금기를 깨고 아내가 크게 재채기를 하니 온 사원이 울린다. 안내원이 조용히 웃다. 바하이신앙에 대한 한글 안내 책자를 나누어주어 인상적이다.

<시크교사원>

나눔을 실천하는 종교인 시크교사원도 역시 신발을 벗고 수건으로 머리를 덮고 입장한다. 누구나 식사 시간이 되어 이곳에 오면 먹을 것을 나누어 준다고 하다. 전병 비슷한 것을 얻어먹어 보았지만 비위가 좀 상한다. 완전 구식으로 함지박에 시멘트 버무린 것을 한 삽씩 머리에 이고 남녀노소 모두 줄지어 공사 중인 2층으로 오르내린다. 일종의 봉사활동인 듯한데 그들의 눈에서 그들 나름대로의 동일한 어떤 묘한 것을 뭉클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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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苦行

犬毛 趙源善


두 어깨 아래가 휑하니 비어있는

백발노인의 두 눈에서

그윽하고도 잔잔한

황홀한 평화를 만났다

꼬인 두 다리가 침묵의 문이요

접시 위의 동전이 서로 향기를 나누는 진리이어라

몸은 비록 구정물에 잠겼어도

행복의 빛은 찬란히 비치는 듯

바로

이게

참 삶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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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문>

전쟁에 참가했던 인도군인들의 위령탑인데 우리의 독립문과 비슷한 모양이고 높이가 40m 좀 넘는다고. 8만5천 희생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비쩍 마른 장사 아치가 손으로 돌려 날리는 장난감 비행기를 자꾸 사라 권한다. 좀 귀찮다.

<델리 역에서 기차로 바라나시까지> 야간열차

열차가 5시간 지연 출발한다하여 대합실에서 3시간을 기다리다가 19: 30 쯤 플랫 홈으로 들어가다. 으악! 수많은 인파에 발 딛을 틈이 없을 정도. 철길엔 오물이 가득하고 토실토실 살찐 쥐들이 왔다 갔다 운동회를 한다. 20: 30 출발예정시간이 되어도 기차는 오지 않는다. 인도남자들은 철로로 내려가 그냥 소변을 본다. 지독한 악취가 풍긴다. 기차를 기다리는 인도인들은 무표정이다. 보따리 속에서 이 보자기 저 보자기를 꺼내 애들을 덮어준다. 애들은 울지도 않는다. 이사를 가는 건지 여행을 가는 건지 보따리도 크고 그 속에서 별의 별 것이 다 나온다. 먹을 것 담요 냄비 등의 일상 용품들이.

무어라 인도어로 계속 방송을 하지만 알아들을 수는 없고 속수무책. 가이드도 모른다고.

무조건 기다려야 한다니. 신문지와 상자종이를 깔고 앉았다. 인도인들은 우리를 구경하고  우리는 인도인들을 구경한다. 기차는 언제 올지 모르고 화장실은 급하고. 우리는 조를 짜서 여자들을 두세 명씩 데리고 급히 화장실을 다녀왔다. 가이드가 햄버거를 공수하여 허기를 채웠다. 짐꾼과 가이드가 언성을 높인다. 짐꾼들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으니 품값을 받아 가겠다는 것이고 가이드는 어쨌든 기차위에 짐을 실어주는 것까지가 계약이 아니냐는 것. 화난 짐꾼들이 수레위에서 우리 옆에다 짐을 부리고 사라졌다.

인도여행은 고행이라고 누가 말해주던 게 생각난다. 3시간이 또 지났다. 우리는 두런두런 불평하느라 말이 많지만 인도사람들은 아무도 무어라 말하는 사람이 없다. 인도는 참 이상한 나라다. 발착역에서 출발시간이 이리 늦어지는 걸 이해 할 수가 없다. 참으로. 드디어 24: 30 에 기차가 들어섰다. 그런데 기다린 쪽이 아니라 다른 쪽 홈으로 들어선다. 이미 플랫 홈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인데 어떻게 가방을 들고 이동 하는가.

이건 난리다. 보지는 못했지만 1.4 후퇴 때의 피난민 열차 타기다. 우리는 정신없이 가방을 들고 아수라장을 뚫고 기차에 겨우 올랐다. 무질서의 극치다. 난 아내를 잃어버릴까봐

안달이 났었다. 좌충우돌 앞장서서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돌격. 허 허 허. 그거 참. 우리 칸은 침대칸이라서 안은 복잡하지 않았지만 일반 객차는 아마 볼만 하였으리라.

휴우. 곡절 끝에 자리를 잡고. 아내는 아래 칸이고 난 이층 칸이고 아내보고 올라가 자라니 죽자고 싫다한다. 객차 안에 우리 바로 옆으로 인도인들이 많다. 몹시 불안하다. 덜렁 올라앉아 소주를 몇 잔 마시며 가이드가 준 아침 도시락을 안주삼아 보초로 날밤을 새운다. 12시 넘어 출발한 열차는 무려 13시간을 달려야한다. 제대로 가려나?

새벽이 밝아온다. 아침이다.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인다. 촌락을 지날 때마다 철로 변에 쭈그리고 앉은 사람들을 본다. 작은 물통을 들고. 이게 바로 대변을 보는 것이란다.

12억 + 알파의 인구가 물과 화장지를 사용하면 엄청날 게다. 옛날부터 습관으로 아무데서나 일보고 손에 물 추겨 뒤를 씻는다고. 그래서 인도인은 치질이 없다니 참. 허 허.

어쩌다 보이는 야트막한 산 이외에 창밖의 풍경은 도시나 농촌이나 지저분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는 기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아침식사를 했는데 김치와 콩자반 무장아찌 등 참으로 구수한 한국식 도시락이었다. 잠시 눈을 붙인다. 창가에 인도 시골 풍경이 적막하다. 점심은 컵라면을 먹었는데 역시 우리의 신라면 이다. 참으로 대단히 맛있게 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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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 역驛에서

犬毛 趙源善


나를 진열장에 놓고 슬금슬금 사방을 살핀다.

플랫 홈마다 전후좌우 쭈그린 수백數百 천사의 눈동자들엔 원망이 한 치도 없다

이미 시간을 훨씬 지났어도 언제 온다간다는 기약도 없는 기차

쓰레기와 오물로 뒤덮인 철길 위 살찐 쥐들의 운동회를 말없이 바라보며

태연히 허리춤 풀고 뿌려버리는 하염없는 지린 냄새

울음을 잃어버린 말라비틀어진 아기

비참을 천으로 둘둘 감아 버린 여인의 드러난 맨발

차분히 가라앉은 알아듣지 못하는 안내방송만 벌레처럼 귓속을 들이파고

속수무책

해결의 방법이 없다

나야 어디를 가겠다고 뭘 보겠다고 놀러 나선 길이련만

눈에 보이느니 마치 전쟁터 피난민 같아서

문득 아우슈비츠를 생각했다

그저 기다리는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자꾸 기다려야하는 이들.


드디어 아홉 시간을 와글거리던 이해할 수 없는 긴 기다림의 끝이 와르르 무너져

내 살아생전

이 엄청난 무질서의 아수라장속에 내던져져

하늘이 노래지도록 뒤엉키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려 열차에 겨우 올라

이게 삶인 가 보다

이래야 이 나라사람 십삼억이 산다는 사실

달랑 벽에 매달린 이층침대에 헐레벌떡 누우니

묘한 인도 냄새

이제부터 열두 시간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중얼중얼 딩동-딩동 중얼중얼 딩동-딩동

쭈그린 발밑에 딱 마주쳤던 쥐의 눈동자가 너무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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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일 

<오후: 바라나시에서>

60년대 후반 우리나라의 도시 모습 정도. 다만 자동차가 많이 보이고. 사이클 릭샤와 오토 릭샤가 엄청나게 많이 눈에 뜨인다. 사이클 릭샤란 인력거 비슷한 사람이 모는 세발자전거이고 오토 릭샤란 삼륜 소형 자동차로 우리의 옛 삼륜차와 흡사한 택시이다.

<사르나트 박물관>

인도의 국가 상징인 사자상(BC 3세기경의 작품)원본이 중앙에 놓여있다. 불교 미술품과 불상들이 많이 있는데 정면과 가까이 멀리 좌우 양옆에서 보아 다 다른 형태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불상이 무척 흥미롭다.

<녹야원>

이곳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뒤 처음으로 설법을 편 곳이라 한다. 다멕 스투파란 거대한 2단 원통형의 탑이 서 있다. 지름이 약 28m 높이 34m로 거대하고 웅장하다. 보리수 나무아래 잔디밭이 참 예쁘다. 사슴공원과 붙어있어 사슴먹이를 파는 아이들이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사자상의 다리인 아쇼카 석주가 하단만 덩그러니 남아 놓여있고 나머지 다른 유물들은 2m 높이 정도의 잔해만 남았다. 허망한 일이다. 불교의 성지. 불교의 발생국인 인도에 불교유물로 성하게 남은 것이 몇 개 되지 않는 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이 다멕 스투파라고 한다. 종교 자체도 이슬람에 밀려 역사 속에 사라져 현재의 인도는 불교국이 전혀 아닌 것이다.

출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을 만나다. 때 찌든 엄마가 아이를 안고 있는데 어린아이가 한 근 반이나 나갈까 너무 말라 비틀어져 눈만 보인다. 엄마인지 언니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다. 파리가 아이의 눈가에 여러 마리 들러붙어 있다. 재주넘기를 하며 또 다른 아이가 돈을 달라한다. 원 달러 원 달러 하면서. 아내가 1불씩 나누어주자 순식간에 십여 명이 모여들어 아우성이다. 도망치듯 차에 오른다. 가이드는 되도록 돈을 주지 말라고 설명한다. 저애들의 재수 좋은 날 하루 구걸벌이가 부모들 벌이의 몇 배라고 한다. 그래서 저애들이 저 일을 계속하게 된다는 것. 딱한 일이다.

저녁 호텔 식사도 입에 맞지 않다. 그런대로 아내는 잘도 먹는다. 더블베드가 아니라 다행이다. 오싹거리며 추운 듯하다. 밤새도록 설사를 여섯 번이나 했는데 아내는 코를 골고 잘도 잔다. 하기야 아내가 별 뾰족한 도리가 있나? 좀 야속하기는 했지만 잘 자는 게 내게는 천만다행이다. 행여 아내가 아프거나 또는 같이 아프거나 하면 어쩌나 말이다.


제4일 

<바라나시에서>

04: 30 에 지프를 타고 갠지스 강의 일출을 보러 나가다.

<갠지스 강>

바라나시 시가를 가로질러 강가로 나가는 지프 안에서 또 한번 무질서와 지저분의 극치를 보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그런 속에서도 그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갠지스 강가로 나가는 행렬이 노래를 부르며 행진한다. 우리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배에 오른다. 강가와 맞붙은 계단을 가트라 하는데 강 위 아래로 여러 군데 가트가 조성되어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빨래하는 사람, 목욕하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성기를 드러낸 알몸으로 둑 위에 우뚝 서서 강을 향해 무어라 외치는 노인도 보인다. 가트 위쪽으로 강 언덕에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쭉 늘어서 있다. 멋진 광경이다. 물색이 검고 오물도 둥둥 떠서 더러워 보인다. 물고기를 사서 방생하라는 장사 아치가 작은 배를 타고 끈질기게 따라 붙는다.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에서부터 흘러내려오는 이 강물을 마시고 이 물에 목욕하며 이 물에 자신들의 시신을 화장하여 띄우는 것이 가장 원하는 성스러운 힌두교인의 의식이라 한다. 화장터가 보인다. 귀족이던 천민이던 간에 다 똑같이 이곳에 실려와 화장한 후에 그 뼈를 강에 뿌린다했다. 때로는 화장비용이 부족하여 불에 덜 탄 시신이 둥둥 떠다니기도 한다고. 이들의 목욕은 때를 씻어냄이 아니라 정신을 정화시키는 순수한 종교적 의식이다. 날이 흐려 강 건너편에서 떠오르는 해를 구름 속에서 잠깐 보았다. 강물은 이들 힌두교인들의 신성한 마음처럼 그저 말없이 묵묵히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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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 강江

犬毛 趙源善


지구의 지붕

에베레스트에서 기원起源하여

초승달 모양

신의 머리를 닮은

성스러운 물

목숨 붙어 살아있는 동안 일평생 단 한번만이라도 목욕하고 싶다는 소원所願

죽어서라도 뼈를 뿌리면 영광이라는

축복祝福 받은 자者 온몸 담그고 마시고 빨래하고

마지막 주검까지 불태워 떠내려 보내는

비록 겉이 검고 더러워 추해 보여도 속 또한 그러하지는 않으니

이는 바로 신神을 바라보는 마음의 문제라

그 앞에서 입어도 입은 게 아니요 벗어도 벗은 게 아니라

거기 

씻겨진 맑은 영혼들이 그득 담겨 둥둥 떠다니는

흘러 또 흘러

돌고 또 도는

영원永遠의 강

갠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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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골목>

매캐한 듯 묘한 냄새를 맡으며 화장터 옆 계단을 올라 미로 골목에 들어선다. 길을 잃기 쉬우니 앞 사람을 잘 보라고 가이드가 주의를 준다. 겨우 사람 하나 둘이 스쳐 지날 만한 꼬불꼬불한 골목을 오르내리며 미로골목을 지난다. 바닥은 여러 가지 쓰레기와 소똥 등의 오물이 질펀하다. 조심조심 지나는데 웬 소가 길을 막고 있다. 재주껏 비켜가야 한다. 좌우의 빽빽한 오래된 건물들과 지나치는 사람들이 흥미롭지만 똥을 밟을까봐 땅만 내려 보느라 정신없다. 오토 릭샤에 타고 있는 아이들과 기념촬영을 했는데 귀족계급의 아이들인 듯 교복도 깔끔하고 깨끗하며 미소가 예쁘다. 귀엽다.

<바라나시에서 카쥬라호로 가는 길>

지프에 올라 카주라호로 향한다. 설사를 또 할까봐 좀 불안하다. 여하튼 휴게소에 들릴 때마다 화장실엘 갔지만 다행히 설사가 멈춘 듯하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운전석이 오른 쪽에 있고 차선도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있다. 중앙선 침범은 다반사라 아찔아찔한 순간이 수도 없다. 식은  땀이 줄줄 날 정도였지만 계속해서 밖의 광경을 보면서 신경을 꺼 버렸다. 너저분하고 더럽기야 인도에서는 어딜 가도 다 같다. 여기저기 소똥을 빚어 말리는 광경이 보인다. 가도 가도 평원이다. 작은 소도시와 좀 큰 몇 개의 도시들을 지나치는데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서 몹시 덜컹거린다. 멀리 보이는 산 몇 개조차 모양이 둥글둥글 민둥산이다. 뾰족한 산은 없다. 작은 언덕을 하나 넘어가다가 잠시 쉬면서 움집 같은 데 사는 원주민을 만난다. 사진을 찍고 사탕을 나눠주었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오랜만에 밥은 좀 맛이 없지만 한국에서 공수했다는 김치찌개와 된장국을 먹었다. 참 맛있다. 에라 모르겠다하고 소주를 왕대포로 한잔 아내 몰래 마셨다.

여전히 가도 가도  똑같은 모습의 인도 시골길. 차안에서 또 소주와 양주 몇 잔을 동행한 은퇴조종사 부부와 더 마시다. 어두워진다. 무려 11시간 만인 밤 9시경에야 카주라호의 호텔에 도착하다. 지프가 아니고 버스를 이용하면 13시간이상 걸리는 거리란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