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0.6월 이전(플래닛에서 이동)

부탁

犬毛 - 개털 2009. 3. 1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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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

犬毛 趙源善



깔딱 숨넘어가기 전에 미리미리 쓸만한 부품은 미련 없이 다 나누어주어라

멋지게 활짝 웃는 근사한 얼굴의 사진을 골라 큼지막하게 확대해서 세워놓아라

부의봉투는 악착같이 받아 내 글방 속의 세상구경 못한 놈들 차곡차곡 책으로 내주어라

쓸데없는 꽃 치장 따위 집어치우고 화환도 일체 사절해라

소주나 한 대접 부어놓고(병은 안 보이게 감출 것) 성경이랑 내 시집 몇 권 얹어놓아라

시커먼 옷 절대 입지 말고 방긋방긋 환하게 밝은 모습으로 신나는 잔치를 해라

손님들이 실컷 떠들고 웃고 즐기고 취하게 맛있는 음식으로 정성껏 대접해라

미련 없이 활활 불태워 남는 찌꺼기는 나무거름으로 주거라

어쩌다 생각나면 가끔 들러서 막걸리나 한통 부어 주든지 말든지

너희들이야 뭘 해먹던 간에 알 바 아니지만 엄마는 끝까지 잘 보살펴드려라

죽을 주제에 미주알고주알 어쩌고저쩌고 뭔 말이 이리 많은 지 좀 미안하다

이걸 안 지킨다고 해도 내가 확인할 방법이 없어 어쩔 도리 없지만 내 마지막 부탁이다

그렇지만 내가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이글은 2009년 3월18일 12시49분부터 효력을 발한다.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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