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0.6월 이전(플래닛에서 이동)

<주酒전자>

犬毛 - 개털 2008. 1. 2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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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酒전자>

犬毛 趙源善



오십 줄 개털들이여

오후 세시쯤에 만약 무료하다면 어디서건 아무렇게나 무조건 1호선을 타시라

석계에서 내려 성북역 쪽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으면 그 집 쉽게 만날 게야

딱 들어서면 연탄 화덕들이 양쪽으로 쭉 늘어섰어

메뉴는 영이 철수 바둑이가 그려진 사회책이고

웨이터는 고등학교 까만 교복을 입고 주번 완장을 찼지

화장실은 쪽문으로 나가서 오른 쪽으로 돌면 되고.

 

제일 먼저 맘에 드는 것 - 벽 한가운데 위쪽 높은 곳에 태극기가 우뚝

찌그러진 노란 막걸리 주전자랑 양은 대포 잔

주황색 공중전화

아리랑 새나라 청자 전우 담배

칠성사이다 오란씨 빈병

하늘색 비닐 대나무우산

천정에 디룽디룽 매달린 미원 빙글빙글 진열대

거기 빨래집개로 걸린 건빵 봉지당원 별사탕 나부랭이들

또뽑기 종이판에 촘촘히 꽂힌 풍선과 오려내는 동그란 그림딱지

길고 짧고 빨갛고 노란 색색의 쫀드기

삼양 쇠고기라면 봉지

“소나기” “똘이 장군” “별아 내 가슴에”같은 영화 포스터

아톰 로봇 태권 브이 인형

교표 달린 검정색 고등학교 모자

국민학교 개근상장 무슨 표창장과 졸업장

알 굵직한 손때 묻은 주판

왕자 크레파스

오징어 연

유엔성냥과 비사표 팔각성냥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할아버지 할머니 사진과 여러 장의 가족들 흑백 사진

이 모든 것들에게서 솔솔 풍겨져 나오는

정겨운 흙냄새

결코 낡았다고 할 수 없는

아름답고 구수한

진짜 우리들의 냄새.


거저 주는 밑반찬도 전라도처럼 여러 가지, 예를 들어 번데기까지 아주 깔끔해

안주도 가지가지 많지만

일단 김치전에 막걸리 한 되 시켜놓고

이 벽 저 벽 둘러보며

한 모금 씩 한 모금 씩

우리들만의 옛 추억을 마시는 거야

꼴깍 꼴깍 꼴깍 꼴깍

아하, 그리고 밥은 말이야 군대 반합에 넣어서 볶아 흔들어 비벼준다는 사실

자근자근 씹어보고 또 자근자근 씹어보고

그러다 공연히 낭만에 푹 젖어 징징거리면 안돼

제법 얼큰해졌다 싶으면 더 이상 궁둥이 붙이고 뭉개지 말 것

이제는 왁자지껄 젊은 친구들 올 시간이거든

몸 생각도 하셔야지.


아이구야! 

군침이 입안에 뱅뱅 돌다 못해 질질 흘러내리네요 

개털 친구들이여

한번쯤 슬쩍 왕림해 보시라.

<0801>


추신: 무슨 광고라고 오해하지마시라. 그저 나만 알기에 좀 섭섭하여 주절주절

     떠든 바, 꾼이면 기억하시고 아니면 그냥 잊으시라.

     이 집과 나 개털과는 전혀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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