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견모 조원선
산책하다가 핀잔 들었다. 아내가 말하면 난 반드시 뭐라했느냐 되묻는다. 잘못 알아듣고 딴소리하는 것보다 확실하게 다시 물어보는 게 낫다. 퇴물 영감탱이란다. 하기사 온종일 계속 자꾸만 되물으니 짜증나겠지만 난 더 답답하다는 사실. 말소리는 안 들리는데 밤낮없이 귓속에서 매미는 울어대니.
돌발성난청 발병 7년차. 재작년에 한번 더 증세가 나빠져 오른쪽 청력 거의 상실. 이명과 공명도 극심. 첨단치료 받았지만 회복불가판정. 의사소통은 그런대로 가능해서 보청기는 싫고. 잘 아는 사이라면 크게 말해달라 하겠지만, 사람 만나는 게 귀찮다. 볼일 외출시에는 꼭 아내를 동반한다. 옆에 통역(?)이 있어야 안심이다. 서울가기 싫은 것도 관계있다. 둥이(개) 때문에 나 혼자 가야하는데 그게 문제. 아내는 자주 서울을 다녀왔지만 난 6년 동안 딱 2번 집안 대사에만. 제주섬 시골 귀머거리 퇴물 애물단지 영감탱이다. 우리집이 한적한 제주시골 귤밭마을이니 사람만날 일 거의 없지만 어쩌다 가끔 문학회나 동문회 모임에 가는 거 조차 점점 피곤해진다. 왁자지껄 시끄러우면 소리선택도 안되고 왕왕 울리고 정신 못 차린다 ㅡ 난 잘 못 알아들으니까 그냥 끄덕거리며 말없이 막걸리만 자꾸 퍼 마시게된다. 그래서 취하게 되고 취해서 집에오면 아내에게 야단맞고. 아 아, 이리하여 내 마음의 문이 점점 닫혀져가나보다.
막걸리 사들고 집으로 쳐들어온다는 서울친구 전화소리는 잘 들린다. "사랑해! 여보!" 아내 말소리도 잘 들린다. 내 방귀소리도 잘 들린다.
그래! 한 귀는 살아있으니 쪽문이라도 항상 열어두자.
허허허.
(20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