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말생신도비趙末生神道碑 - 20130306
犬毛 趙源善
1999년 고인이 되신 부친의 말씀과 내가 소장한 족보에 의하면 나는 조말생趙末生님의 후손.
내 조부의 함자는 조중설趙重卨님.
내 부친은 조긍호趙兢鎬님.
나는 조원선趙源善.
내 아들은 조준식 趙浚植.
밑줄 친 자가 돌림자.
십여 년 전 이곳을 지나치다가 우연히 길가의 유적안내판을 보고 방문. 후로 종종 이곳을 찾음.
나는 직계 종손가는 아니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조말생趙末生님으로 모아짐.
현재 이곳은 직계 종손가가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
나는 조상임을 확인하고 가끔 들러 조용히 추모.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 소재.
조말생(趙末生: 1370년 ~ 1447년)은 조선의 문신.
자字는 근초謹初·평중平仲, 아호雅號는 사곡社谷·화산華山.
본관은 양주楊州.
태종 때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정언·감찰·헌납 등을 지냄.
1403년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왔으며, 그 후 장령·예문관 직제학·승정원 동부대언 등이 됨.
태종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으며 세종 때 예문관 대제학을 거쳐 판중추원사에 이름.
서예가로도 이름을 떨침.
신도비神道碑란 무덤의 남동쪽에 南쪽을 향하여 세우는데 신도神道란 죽은 자의 묘로墓路. 즉 신령의 길. 신도비는 한漢나라에서 시작되어 고려시대부터 유행. 고려시대의 신도비는 현재 전하는 것이 없고, 책자에 묘비명만 전할 뿐. 조선시대에는 2품品이상의 관리에 한하여 신도비를 세우는 것을 제도화하고, 명종은 왕릉에 신도비를 세우는 것을 금지시킴. 공신이나 석학碩學에게는 왕명으로 신도비의 건립을 허락. 보통 귀부龜趺(밑받침 부분)와 이수(비석의 머리 부분)로 이루어 짐.
조말생신도비는 남양주시 향토유적 제3호로 1756년(영조 32)에 건립. 원래 조말생 묘역은 지금의 금곡동 홍릉(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능)자리. 하지만 고종황제가 본인의 묘 자리를 현 홍릉터로 1900년 공표. 그리하여 1938년 이곳으로 이장. 묘하게도 귀부의 거북이머리 방향이 고개를 내밀고 남양주시 금곡동을 향하고 있음.
사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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