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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원교장 정년퇴임 송사

犬毛 - 개털 2009. 7. 19.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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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


오늘 삼십팔 년 교직생활을 졸업하시는 교장선생님께 축하의 인사를 드리게 됨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늘이 내린 천직의 소명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가리키는 교사로서 퇴임이라는 좀 슬픈 단어보다는 졸업이라는 아름답고 희망적인 단어를 쓰고 싶습니다.

수많은 제자들을 졸업시키면서 늘 훈화말씀만 하시던 교장선생님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후배의 송사를 들으시는 입장이 되었으니 참 감회가 깊으시리라 생각됩니다.

감히 한 말씀드리자면, 졸업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가르침에 끝이 없으며 배움에도 끝이 없다했습니다. 죽을 때까지 가르치고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합니다.

오늘 우리 태랑중학교를 졸업하시는 교장선생님께서는, 앞으로 저희 후배교사들의 등뒤를 태산처럼 듬직한 버팀목으로 지켜주시고 끊임없이 가르쳐주시는 한편, 또한 새로 접하시는 새 사회의 신입생으로서 새로운 것을 새롭게 더 많이 배우셔야 합니다. 그동안 미뤄두셨던 즐거운 인생 공부를 사모님과 함께 두 손 꼭 마주잡고 나란히 더욱 열심히 하시라는 큰 숙제를 안겨드립니다. 한달마다 우리학교 막내 임효준선생을 보내 철저히 숙제의 이행여부를 검사 하겠습니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라는.......졸업가의 한 구절을 생각해봅니다. 현직에 남은 우리들을 계속 앞에서 지도편달해 주실 것을 굳게 믿으며 또한 저희들은 교장선생님께서 늘 말씀하신대로, 책임을 다하는 교사로서 우리 대한민국의 영원한 보물인 아이들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갈고 닦아 가르쳐 보람차고 평화롭고 행복에 가득 찬 역사에 남는 태랑중학교로 만들 것을 약속하렵니다.


대나무 잎처럼 항상 푸릇푸릇하시고

대나무 기둥처럼 항상 꼿꼿하시고

대나무 뿌리처럼 항상 혈기왕성하시고

대나무 향기처럼 항상 은은하신 우리 교장선생님!

아니 선배님!

아니 형님!

온 정열을 바쳐 헌신하시어 교육계에 남기신 빛나는 발자취를 마음 속 깊이 새기면서

후배가 <학교> <선생> <제자> <알부자> <우직>이라는 졸작 시 다섯 편으로 이 즐거운 날을 축하드리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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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슬기는 물개 이마

지수는 독수리 눈썹

송이는 부엉이 쌍꺼풀

현우는 진도개 코

희야는 꽃사슴 눈

민호는 금붕어 입술

연주는 토끼 덧 이빨

병규는 캥거루 귀

다혜는 다람쥐 보조개.


애들 제각각 엄청나게 예쁜 것 하나씩

내 세월의 눈에 넣어

날마다

예쁘다 예쁘다 한다.


돋보기 안 쓰면 작은 글자 전혀 안보이듯

어쨌거나 미운 건 몽두리 모아 내 코밑에 감춰두었으니.


좌우지간

애들은

진짜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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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先生



반드시 두 집을 지어야 산다.


일단 튼튼한 말뚝을 군데군데 똑바로 박아놓아라

기초가 단단해야 벽돌을 차곡차곡 잘 쌓을 수 있으니 한 구석 기울어짐 없도록 해라

어쩌다 축에 걸려도 마음 도사리고 얼른 손을 빼어라

끝까지 물고 늘어지지 말고 대충 갈라 쳐서 서로 사이좋게 나눠먹어라

가끔 딴청 피다가 어깨를 슬쩍 짚어라

아까우면 버려두었다가 싱싱한 패감으로 써먹어라

꼬드길 때는 간 한 조각 떼어주고 잡아먹을 때는 심장을 콱 찔러라

반집을 이기거나 불계로 이기거나 마찬가지니 지나친 욕심은 버려라

깊이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되 결코 물리지 말거라

져도 슬퍼말고 이겨도 또한 손을 내밀어 위로하고는 처음부터 다시 복기해 보거라

가로 세로 열아홉 줄 속에 무궁무진한 수가 숨어있느니라.


전쟁에 정석은 없다

비록 내가 너를 한 집도 못 짓도록 모질게 후려 갈겨 잡아 돌렸어도

네가 미워 너를 아프게 때린 것은 절대 아니다

네가 나를 짓밟고 내동댕이쳐 이겨도 난 정말 기쁘다

내가 널 가르친 이상 난 너의 영원한 스승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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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弟子



제아무리 기고 뛰고 날아서

국회의원 아니라 장관에 대통령할아비라 할지라도

내 앞에선 넙죽 엎드려 절대 꼼짝 못하지

코찔찔이 떼쟁이 똥고집 버르장머리 바로잡아준 게 누구인데

어서 술이나 한잔 따라봐라 이 녀석아

아무튼 훌륭하게 컸으니 참 장하다 내 새끼

이 맛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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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부자



하루 온 종일

금이야 은이야 옥이야

비취에 산호에 다이아몬드에

눈에 뵈는 게

손에 닿는 게

몽땅 다 값나가는 엄청난 보석들

지천에 쫙 깔려 영롱하게 번쩍번쩍 빛나고 있으니

눈이 부셔 정신 못 차려요

실컷 어루만지고 보듬고 쓰다듬고 끌어안고 토닥토닥 갈고 닦아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지요

으쓱 으쓱

어디,

나만큼 알부자에 나보다 더 행복하신 분 있으시면 나와 보세요.


너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뒷조사 하신다고요?

나,

선생先生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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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직愚直



열 번 죽어서 열한 번 다시 태어나도

백 번 죽어서 백한 번 다시 태어나도

천 번 죽어서 천한 번 다시 태어나도

눈 한 번 안 돌리고 나는 또 선생先生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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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선생님 아니 선배님 아니 형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오늘의 졸업을 축하드리며

아무쪼록, 늘 웃으시는 얼굴로 늘 건강하시고 늘 즐거우시며 늘 행복하셔서 가정에 평화가 가득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훌륭한 태랑의 졸업생을 배출하는 이 자리에서, 우리 태랑가족의 축배를 제의합니다.

우리 모두 서로 영원히 사랑하는, 마음의 잔을 높이 드시고,

우렁찬 목소리로 세 번 하겠습니다.

테랑! - 위할 랑

태랑! - 위할 랑

태랑! - 위할 랑.


이천구년 팔월 이십팔일 교직원을 대표하여 후배 조원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