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0.6월 이전(플래닛에서 이동)

개천절 일기

犬毛 - 개털 2007. 10. 3. 16:04

 

0

 

개천절 일기

犬毛 趙源善



오늘 아침 실로 오랜만에 태극기를 꽂았다.


바야흐로 시월이라며

가을이 익어간다는 둥 이런저런 인사치레 날아드는 데

치맛자락 여미라는 샛바람 타고

아리송한 말들이 볶이는 콩 튀듯 난무 한다

오월동주吳越同舟 작사 작곡 동상이몽同床異夢의 노래

골목 여기저기 끼리끼리 노는 애들 싸움 끝 앙앙 코피 터지는 소리까지

한껏 비위 틀린 하늘

열리기는커녕

부슬비만 투덜투덜 뿌려댄다.


에-라 나가자 나가

명절 술타령 열 받은 위 염증이니 죽이나 좀 드시고 당분간 쉬라는 진단까지 버무려

파 숭숭 얹어 부친 빈대떡에 탁주 걸치는 이유

아, 태극기 비 맞을 게 걱정스러워서

그럼! 말 되고말고

대포로 딱 두 방이야

슬슬 간이 배 밖으로 나오려할 때 일어서야 해

목 추겼으면 살아야한다

“왜 좀 더 놀다 가시지”

“아유 마누라 무서워”

“벌써요? 그렇게 안 보이는데”

“백수라 돈도 없다니까 자꾸 꾀이시네.”

내 코가 석자란 말은 절대 안 했으니 됐어

참 잘 했다

씁쓸하니 뒷짐 진 궁둥이가 구리다.


밤새 쓸쓸히 비 맞을 태극기가 불쌍해서 공손히 걷었다

한글 생일까지 그냥 놔둬도 된다지만

안 된다

태극기가 우는 건

난 

정말 싫다

그 날은 그 날이고.


침대에 시체처럼 누웠다

끅 끅 부글부글 지글지글 쪼르륵쪼르륵 쿡 쿡

속이 쓰린 건지 아린 건지 쑤시는 건지 아픈 건지

노랫소리 심드렁하다

아리랑-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역사적인 시월 삼일이

나를 또

배 아프게 했다.

<0710>*

'詩 2010.6월 이전(플래닛에서 이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며느리 감  (0) 2007.10.05
이끼  (0) 2007.10.04
아리랑  (0) 2007.10.02
어찌 지내시냐고?  (0) 2007.10.01
나 따라 해봐라  (0) 2007.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