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20년)

국물만 남은 게장

犬毛 - 개털 2020. 12. 4. 12:56

국물만 남은 게장
견모 조원선

"당신 게장 정말 잘 먹네. 이게 마지막이야. 여태껏 다리 딱딱한 건 내가 잘라 먹었고. 당신은 몸뚱이만 먹은 거야. 그래도 당신 앞이빨 조심해."
헉 ㅡ 이 무슨? 요 사흘동안 게장먹으면서 나는 몸뚱이만 먹고 아내는 다리만 먹었다는 얘기? 어쩐지 겨우 1kg 사온 것 치곤 오래먹는다했더니. 오일장의 게장은 사실 좀 미덥지않지만 아주 오랫만에 내가 먹고싶다 졸라서 조금 사온 것. 게다가 내 앞니가 부실해서 단단한 다리는 못 먹으니까 그저 살 보이는 대로 막 주워먹었는데. 아, 이거 참!
"당신 바보야? 왜 그딴 짓을 해? 이거 당신 먹어!" 화내는 척 한덩이 남은 몸뚱이를 아내 밥그릇에 얹어주고는 고개를 돌렸다. 눈물이 핑 돈다. 이런 염병할!
당장 시내에 나가 물좋은 한상자 사다가 게장담가서 둘이 실컷 먹으련다. 한데 게장담그는 일 또한 아내 몫이니 ㅡ 끌끌.
(2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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