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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Yanni / Deliverance (인도 타지마할 실황)

犬毛 - 개털 2007. 12. 26. 14:44

 


 

 

음악, 깨달음을 통해 자유로워지는 것
  "모든 예술의 본질은 속박에서의 해방입니다. 틀(규범)은 갖되 그에 속박되지 않는 훈련, 감정은 갖되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그것이 자유라고 봐요. 나는 스스로를 속박에서 해방시켜 보다 자유로워지기 위해 음악을 합니다. 물론 자유라는 것을 정의하려는  자체부터가 문제일지도 모르죠. 자유란 무엇인가, 어떤 자유를 말하나. 예를 들어 병이 나서 좋은 의사를 만난다 해도, 과연 인간이 병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다면 왜 음악을 하겠습니까.

"깨달음을  통해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그리스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 야니(Yanni)가 한 말이다.

  "연주는 그 순간 살아있는 것인데, 어떻게  생명력을 복원해 둘수 있겠습니까. 음악의  생명은
현장에서 연주하는 일회성인 것이지, 내일 다른 곳에서 똑같이 연주될 수는  없습니다. 레코딩은
음악가에겐 선전 효과와 돈을 가져다주겠지만, 그것은 이미 진짜 음악이 아니지요. 아크로폴리스
라이브 앨범을 들으며, 그것으로 저의 멋있는 음악세계를 체험한다는 것은 대단히  비극입니다.
모든 예술은 그 당시에 한해서만 체험이 가능합니다." 야니가 '99년 타지마할 공연과 자금성 라이
브를 앞두고 한 말이다. 단 한번도 '적당히'라는 말이 통하지 않았던 야니, 그가 20여 년간
대중음악계에 몸담을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그는 "사고하지 않는 단순한 테크니션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컨템포러리 음악계의 거장, Yanni
  지난 '93년 9월 25일. 인류문영의 고도(古都)  그리스 파트테논 신전에서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
트라를 지휘하며 야니(Yanni)가 선사했던 그 감동의  선율을 기억할 것이다. 야니는 그날  밤, 건
반악기 하나로 인종, 국경, 연령, 언어를 초월해 전 세계 음악팬들을 하나로 묶었다. 그의 음악의
핵인 키보드와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조화를 이룬 이 공연은 단순한 콘서트라기 보다는 무려 2년여의 준비작업 끝에 이루어졌다는 점이 말해주듯이 완벽한 이벤트였다는 데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200여 명 이상의 조명 및 음향 전문가들이 동원되었고, 에미상을 여섯 번이나 수상했던  조지 베라스(George Veras)가 연출했던 이공연은 1994년 봄 PBS 방송을 통해 전파를 탄 이후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단순히 음악을 들려주기 보다는 관객들을 감정적(emotionally) 서로 연결해주고  싶다'는 야니의 말처럼 단순히 듣는 음악이 아닌, 마음으로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

당시의 라이브 실황앨범은 뉴 에이지 앨범으로는 이례적으로 빌보드200 앨범 차트에서도 5위('94.4)에 뛰어오르며 7백만장이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기록했다.

또한 이 앨범은  '빌보드'지의 94년 팝계 총결산 차트에서 '최우수 뉴 에이지 앨범' 부문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야니는 클래식과 재즈, 뉴 에이지를 넘나들며 작곡가와  연주가로서 우리 시대의 가장 혁신적인 아티스트란 평가를 받고 있다. 1980년 데뷔  앨범을 발표한 이래 1934년까지 10장의  앨범을 내놓
았고 '97년 소속사를 EMI로 옮긴 후, 새로운 음악적 실험을 담아낸  앨범 <>를 공개했다. 야니는
이 앨범에서 인도와 중국공연에서 얻게된 동양문화에 대한 경외감을 담아냈다. 아울러  지난해 3월, 3일 동안 타지마할에서 거행된 인도 독립 50주년 기념행사에서 거두어들인 공연 수익금  3백만 달러를 인도의 신전 보존기금으로 선뜻 기부하기도 했다. 또한 같은  해 5월 30일과 31일에 펼쳐진 자금성에서의 공연으로 야니의 공연은 절정을 이루었다.  특히 이공연은 인도와 중국의 TV를  통해 1억 이상의 시청자들이 관람하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운 바 있다.

  그리스 출신의 신서사이저 연주자 겸 송라이터 야니(본명  Yanni Chryssomallis)는 1954년 그리스 칼라마타에 태어나   18세 때   수영 올림픽   대표선수로 발탁될   정도로 뛰어난   스포츠 맨이다(그의 Reflections of Passion의 뮤직 비디오를 보면  야니의 멋진 수영실력을 볼 수 있다).
 18세 때인 1972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네소타 대학에서  심리학사  학위를  받았고,  이 시기 아마추어 밴드-카멜레온 (Chameleon)이라는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등을 거치면서 음악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의 나이 21세 때, 카멜레온 밴드에서 5년간 활동을 하면서 음악적 역량(작/편곡)을
키워나갔으며, 그 역시 이때를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시기라고 밝힌 바 있다.  야니는 1980년 데
뷔 앨범 <>를 발표하며 자신의 음악 세계를 팬들에게 선보였으나 주목을 얻지 못했고 실질적인 데뷔 앨범 <>('85)을  프라이브트 레이블에서 내놓으며 뛰어난  뉴 에이지   뮤진션으로 주목을 받는다.   <>('87),   <>('90) 등 일련의 히트작을 내놓으며 뉴  에이지 장르에서 단연 선두자리를 굳건히 지킨  야니는, 마침내 1994년 발표한 <> 앨범과 뮤직 비디오의 성공으로 정상의 뮤지션으로 올라서게 되었다. 같은 해  여름엔 75일간 미국 순회공연을 가지며  뉴 에이이 음악으로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었다. 그의 음악엔 따뜻한 인간애가 흐른다.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느끼는 음악이 바로 야니의 음악 세계가 지닌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야니는 공식적으로 <>에 이르기까지 모두 10장의 앨범과 편집앨범을 가지고 있다. 이후  지금까지 <>('97), <>, <>, >('99) 등 몇장의 베스트 성격의 dofqjad나 모음집도 나왔다. 클래시컬한 성격을 띤 작품부터  영화음악에 이르기까지 그는 실로 다양한 음악 세계를 펼치며 20여 년간 뉴 에이지 음악계에 진정한 스타로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야니는 음악을 통해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교류하는 타인들의 삶을 공유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그의 음악적 모토는 '음악을 매게로 세대와 문화를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의 다음 발언, '가장 중요한 것은 열린  마음인데 우리의 마음을 닫아버린다면 거기서  모든 발전은 멈추어 버린다.'는 이러한 그의 음악적 방향에 중요한 단서를 제시한다.  컨템퍼러리 인스트르멘틀 아티스트로 불리길 원하는 야니, '95년 3월  24일과 25일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성공리에 마치며 우리에게는 매우 친숙한 아티스트가 됐다. 특히  그의 음악인으로서의 긍지 즉, "음악은 사회적으로 아주 힘이 세다.
그런 만큼 음악인들의 책임도 크다"고 했다. 또한 "나는  클래식, 로큰롤, 그리스 전통음악에 영향
을 받았다. 음악적  목표는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연계되는 것이다. 내음악을 들은 이들에게 작은
파문을 일으킬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나는 인생의 경험을 음악으로 해석한다"고 말했다.

 

출처 : Yanni / Deliverance (인도 타지마할 실황)
글쓴이 : 고물장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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